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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Apr 05. 2019

봄 같은 인간관계

일부러 초대하고, 일부러 연락하지 않아도 찾아와 줘서 고마워


“엄마, 친구 사귀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팀장님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워킹맘인 팀장님은 잘 적응하는 아이가 대견하고, 또 이것저것 궁금하기도 하여 반에서 누구랑 제일 친하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게 바로 우문현답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입학한 지 한 달 남짓된 아이에게도 이건 너무 성급한 질문이었나 보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싫은 친구 좋은 친구 가리지 않고 같이 어울려 다녔다. 어울렸다는 건 우아하게 포장된 말이고,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게 ‘애썼다’는게 솔직한 표현일 것 같다. 친구가 곧 삶이자, 우주이자, 전부였던 나이. 그렇게 몰려다녔어도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는 중학교 친구 4명, 고등학교 친구 2명이다.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낀다.


종종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한잔씩 하는 동네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너는 엄마랑 사이가 어때? 나는 너무 버거워.”

 나를 맨날 시어머니보다 더하다고 하며, 간혹 왕싸가지라고도 욕하는 우리 엄마를 떠올리며, 나 역시 엄마와 ‘사랑과 전쟁’ 같은 관계라고 말했다. 좋다고 같이 놀다가도, 무지하게 싸우기도 하니 말이다. 당신 뱃속에서 나와 무한 사랑만 줄 것 같은 엄마와의 관계도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하물며 다른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건 말해 무엇할까.


예전에 협력사 담당자 중에 ‘강 모씨’라는 갑 중의 갑인 사람이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 건 기본이고, 사소한 자료 요청 하나 순순히 들어주는 법이 없었다. 편성 시간이 변경되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는 인물이었다. 그 사람 때문에 MD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고, 머리카락도 매일 한 움큼씩 빠졌다. 그런 담당자가 다른 부서에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팀원들 모두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새로운 담당자를 만나기로 한 날이 왔다.

“안녕하세요. 새로 업무 맡게 된 ‘강 모씨’입니다”

‘강 모씨’였다. 딴 팀으로 발령 났다는 그 강 모씨가 다시 나타나, 나와 일하게 된 새로운 담당자라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거의 절규하다시피 머리를 쥐어뜯으며 꿈에서 깼다.

 맞다. 다행히 꿈이었다. 안도와 동시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이토록 팍팍한 일상에도 어느덧 봄이 왔다.

연락도 잘 되지 않고, 방송 준비 한번 하기가 힘이 드는 협력사들을 대하다 보니, 피워달라고 애원하지 않아도, 찾아와 달라고 사정하지 않아도 말없이 와서 꽃을 피워준 봄이 고마울 정도였다. 전 애인처럼 다른 사랑이 생겼다며 가버리지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처럼 어느 학생만 더 예쁘다며 편애하지도, 어제 만난 협력사처럼 실적이 안 좋다고 방송을 다 취소해버리지도 않는다. 한번 찾아오면 다른 곳엔 가지 않고, 어느 지역에도 차별 없이 봄을 물들이며, 한번 물들인 봄은 그의 힘이 다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운다. 시간에 따라 멀어지기도 하지만,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다시 찾아와 따뜻하게 대해준다.



늘 관계에 애쓰는 우리지만, 그런 중에 애쓰지 않아도 찾아오는 봄과 같은 관계가 있다. 그게 부모님일 수도 있고, 배우자 혹은 친구 일수도 있다.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계획에 없던 야근 때문에 취소해야 할 때, ‘너는 왜 그러냐’며 나무라지 않는다. ‘힘들어서 어떡하냐’며 같이 회사 욕을 해주고, 다른 날 만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봄 같은 사람들이다. 업무적으로 만나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이런 관계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주변의,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과는 이런 봄 같은 인간관계를 맺고 싶다. 당신의 친구, 애인, 또는 당신의 부모형제가 당신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그런 관계는 무시해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세상 밖에 그런 존재는 충분히 많기에, 내 세상에서만은 가장 따뜻하고, 위로받아야 한다.


꽃이 피기 시작했다.

봄을 닮은 나의 사람들과 이 계절을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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