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재택 대신 출근을 선택한 남편 이야기
"진우 님, 재택근무 오래 하다 보니 사무실 출근하면서 제가 깨달은 게 뭔지 아세요?
'내 몸을 본능대로 하도록 두면 안 된다'는 거예요."
신랑의 회사 동료가 건넨 이런 솔직하고 원시적인 고백을 듣고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편하게 집에서 근무할 때는 가스가 조금 나와도, 콧속이 간지러워도, 심지어 욕 같은 것이 육성으로 튀어나와도 괜찮았다. 그런데 그 습관이 나도 모르게 사무실에서까지 이어질 뻔했다는 아찔한 상상.
이것이 재택근무의 단점이라면 유일한 단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재택근무는 장점이 훨씬 많은 근무 형태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장점 말고, 재택근무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귀여운(?) 단점들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1. 먹는 것도 부실한데, 살은 왜 찌는 거죠?
우리 회사는 새벽 2시부터 새벽 6까지를 제외하고 모든 방송이 라이브로 운영된다. 라이브 첫방이 끝나는 시간부터 구내식당은 바쁘게 돌아간다. 아침, 점심, 저녁, 거기에 야식까지 나오는 회사. 반찬 가짓수는 기본 5가지에 비빔밥 재료와 샐러드, 과일은 항시 구비되어있다. 식당 여사님들은 큼직한 국자로 국이든 반찬이든 푹푹 떠서 주신다. 게다가 외식업 계열사를 두고 있는 회사답게 그 맛의 명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재택근무를 한 뒤 나의 식단은 라면, 빵과 커피, 또는 배달음식.. 먹는 건 이리도 부실해졌는데, 왜 다들 나한테 얼굴 좋아졌다고 하는 거죠?
2. 출근이 낫다는 남편
둘째를 낳은 지 50일. 첫째의 유치원 등원까지 중지되어 네 식구가 옹기종기 집에 머물게 되었다. 6살짜리가 집에 갇혀있다는 것은 (1) 멈추지 않는 질문과 (2) 끊임없는 요구사항과 (3) 지치지 않고 놀아달라는 요청을 감내해야 함을 뜻한다. 그런 상황에서 둘째가 큰일을 보면 나는 지친 몸으로 신랑을 한 번씩 부르곤 했다. 어떤 날엔 그를 너무 많이 부른 나머지 '혹시 내가 근무 중인 거 잊고 있는 건 아니지..?'라는 말로 신랑은 자신의 위치를 소심하게 일깨워준다.
신랑을 부르는 빈도가 높아진다 싶을 즈음에 그가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출근 강요도 없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말이다. 업무 하면서 애기 똥도 치워야 되는 근무환경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3. 출근 좀 하라는 아내
여차여차 아이들은 유치원 등원을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들은 계속 집에 있다. 신랑은 우리 집 재택근무 환경에 지친 나머지 차로 10분 거리의 시댁으로 가서 일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동네 언니가 집이 답답하다며 같이 산책 좀 하자고 연락이 왔다.
집에 나 혼자 있던 시간이 그리워.
언니의 착하디 착한 남편이 반찬투정을 했을 리도, 살림 가지고 잔소리를 했을 리도 만무. 오히려 있는 둥 없는 둥 일만 했겠지 싶다만, 주부의 입장에서 숨 쉬는 어떤 존재 하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 될지 이해도 갔다. 게다가 그 존재가 빈둥빈둥 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정을 위해 일하고 있는 남편이라는 생각을 하면, 언니는 혼자서 휴식을 취하기도, 동네 아줌마들이랑 점심 먹으러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싫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출근해?'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찼다가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출근 좀 하라'는 요구는 마음속으로만 삭히게 되고 마는 것이다.
끼니 챙겨주는 것도 버겁다는 언니의 하소연을 들으니 시어머니께 찔리는 마음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 다음 날 시댁으로 출근하는 남편 손에 김밥 두 줄 들려주었다.
지금은 전면 재택근무 방침이 바뀌어 주 3일 출근을 한다. 더러운 집안 꼴도 잠시 잊고 쾌적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 사람들과 종종 웃긴 얘기도 한다는 것은 나름 괜찮은 일이다. 그렇다. ‘나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구 재택을 선언한 친구네 회사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나도 그냥, 영원히 재택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