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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하 Mar 31. 2024

흐린 날에 만난 불꽃

  매일 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손바닥에서 톡톡하고 튕겨 나갔다. 실내에 들어서 때마다 어깨에 맺히는 빗방울을 털어내야 했다.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는 탓에 외지인인 나도 후드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니는 정도가 전부였다. 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날씨에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지도를 펼쳐놓고 무턱대고 몇 개월 머무르겠다고 정했던 곳이었다. 카페에서 방해받고 싶지 않을 혼자만의 공간을 찾는 것처럼 이 거대한 땅덩어리 구석쯤 위태롭게 걸려있는 도시를 골랐다. 직장 발령을 기다려야 했다. 한 해 전부터 발령 대기자가 적체되어서 아직 내 차례는 멀었겠구나 싶어 무작정 떠나 있기로 했었다. 학생의 신분을 끝내고 사회로 불려 나가기 전, 내가 맞이할 시간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거나 선택한 삶에 대한 후회 같은 것들이 사라질 때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애틀은 여름 두어 달을 제외하고는 흐린 날씨만 계속되는 곳이었다. 영화 몇 편의 배경이 되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첫날, 앞으로 매일 축축한 하늘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내 선택에 헛웃음이 났었다. 몸만 한 짐을 들고 비를 맞으며 공항에 서 있는 내 모양새가 꽤 초라하게 느껴졌다. 현실로부터 도망쳐 온 몽상가에게 낭만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B는 시애틀에서 만난 토박이 친구였다. 우연히 한 카페에서 한글을 배우고 싶어 했던 B가 “혹시 한국인이세요?”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매일 가는 어학원은 B가 사는 캐피탈 힐(Capitol Hill)에 있었다. 캐피탈 힐에는 내로라하는 로컬 카페가 많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라 주로 자택 근무를 하는 B와 자주 커피를 마셨다. B는 시애틀에 왔으면 라테를 마셔야 한다며 항상 라테를 먼저 주문해 놓고 나를 기다렸다.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날부터 가는 카페마다 라테만 골라 마셨다.

  어느 날, 어학원 가는 길에 서 있는 흑인 기타리스트의 동상을 보고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B는 어떻게 지미 헨드릭스를 모를 수 있냐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시애틀에서 태어난 신이 내린 젊은 천재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했다. 이후로 B를 만나면 항상 차에서 지미 헨드릭스 음악을 들었다. 클래식 기타나 피아노 음색이 편한 나에게 일렉트릭 기타는 낯선 악기였다. 낯선 곳에서 듣는 낯선 진동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B는 자신의 업무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하루는 갑자기 회사에서 연락이 와 어쩔 수 없이 B의 집에서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직장인 친구는 처음인 나에게 B가 일하는 모습이 새로웠다. 직장 생활을 아직 시작하지 않은 나는 일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 동경이 내가 선택한 일과 맞닿아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정확하게 마주하고 나에게 맞는 것인지 헤아려 보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뽑기 기계에서 이유 없이 눈에 띄는 캡슐을 뽑아놓았지만, ‘다음 기회에’도 아닌 ‘꽝’이 나올까 두려워 아직 열어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다만 ‘이미 뽑았다.’라는 합리화로 그것에 어울리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으로 두려움을 잊고 살고 있었다.

  흐리던 하늘에도 밤의 불빛은 온다. 4층인 B의 집에서는 캐피탈 힐에서 파인가(Pine St.)를 따라 내려가면 펼쳐지는 다운타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운타운 더 아래쪽에 숨은 항구까지 보일 것만 같았다. B는 일을 끝내고 테라스에 앉아 이 야경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멋진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좋은 음식과 맛있는 술이,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가 있다면 더 좋다며 병맥주를 건넸다.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며 ‘컨배!’하고 어설픈 한국어로 웃어 보였다. 맥주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공기마다 물기가 고여있는 시애틀의 야경 위로 잔잔하고 진하게 퍼져나갔다.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B는 내가 돌아가기 전 시애틀을 눈에 담아 갈 수 있는 장소를 보여주겠다며 어학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B의 차에서는 항상 짙은 라테 향이 났다. 내가 들어갈 공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가 차의 작은 구멍, 구석구석까지 메우고 들어차 있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기타 음을 비집고 차에 올라탔다. 어깨가 아직 비에 젖어 빗물이 팔을 따라 또르르 흘러내리는 감촉이 제법 시원했다. B는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쯤 ‘여기!’ 하면서 핸들을 두드리며 연신 리듬을 따라갔다. 화려한 광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이 같이 둥둥거렸다. 짧은 생을 살았다는 흑인 왼손잡이 기타리스트의 인생이 마지막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처럼 애잔하기까지 했다. 차 안에 여기저기 기타 줄이 엉켜있어 내가 움직일 때마다 줄에 닿아 기타 소리가 나는 듯했다. 앞머리에 남아있는 물기를 손가락으로 털어내는 모습이 마치 B가 기타를 연주하는 것 같았다. 흩어지는 빗물마저 기타 소리에 녹아버리듯 사라졌다. 손에 든 커피잔의 우유 거품이 아슬아슬하게 같이 리듬을 탔다. 그 리듬을 타고 라테 향이 코끝에 닿았다. 꿀꺽 넘겨버린 라테 한 모금에 이 모든 무드를 함께 삼킨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곧 시애틀 시내가 차창 밖으로 가득 들어왔다.      


  “지미 헨드릭스처럼 살고 싶지만 그런 사람은 별로 없어. 짧은 생애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불꽃처럼 터뜨렸지만 그런 삶만이 멋있는 건 아니야. 난 불꽃같진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 난 내 일이 마음에 들어.”     


  B는 맥주병을 건네며 ‘컨배!’ 했던 그날의 얼굴로 한 번 더 웃어 보였다. 맥주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B가 가진 삶의 태도는 나에게 ‘불꽃’이었다.     


  돌아와 맞닥뜨린 현실은 생각보다 더 고되었다. 자주 일이 고단했다. 나의 일도 감탄할 만한 크고 강렬한 불꽃의 순간은 없었다. 비난과 책망은 있어도 환호는 없었다. 마시지 않았던 라테, 듣지 않았던 일렉트릭 기타처럼 그저 낯설어서 좋았던 동경은 현실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일을 배워가는 속도보다 마음이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모든 것이 내 것인지,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따위를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는 동안 ‘다 때려치우겠다.’ 다짐하며 여러 날을 잠이 들고, 발악하는 알람 소리에 다시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러 날에 출근했다. 직장에서 오는 인간관계나 업무 스트레스는 시간이 흘러도 절대 가벼워지진 않았다. 익숙해질 뿐이다. 매번 무너진 마음을 어른스럽게 차곡차곡 쌓아 올릴 방법은 없었다. 담고 갈 수 없으니 그저 어깨에 남아있는 빗방울 털어내듯 가볍게 쓸어버려야 했다. 그런 익숙함으로 오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때의 흐린 날에 만난 ‘불꽃’처럼 나를 토닥거리며, 하루를 잘 버틴 나에게 ‘컨배!’. 나도 내 일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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