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vanna Nov 10. 2021

"내가 VIP인데 니들이 감히"

여기, 이곳은 백화점 VIP 라운지


  인간은 N개의 에고로 살아간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아마 누군가의 엄마이자 딸, 학생일 수도 있고 사장 또는 직원일 테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처음 보는 타인에게는 친절하다. 무거운 짐을 들고 지하철을 타면 자리를 비켜주고 힘든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최소한의 연민 의식이라도 갖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게 설령 가면일지라도, 첫인상은 그토록 매력적이다. 그런데 "돈을 많이 쓴 사람"이라는 에고도 따로 있나 보다.


  타인에 대한 친절함, 배려, 연민 의식. 이 모든 게 부정되는 장소가 있다. 그곳은 백화점. 내가 일했던 곳은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큰 대형 백화점의 VIP 라운지였다. 그곳은 허가된(registered) 사람들만 이용이 가능한 곳이다. 조건은 구매 실적. 1년 간 어느 정도의 구매 실적과 횟수를 갖춰야지만 이용이 가능하다. 웃긴 건 구매 실적에도 '급'이란 게 있다. 몇 백에서부터 억 단위까지 급이 매겨진다. 내가 속했던 라운지는 그중 가장 하위 등급이었다. 일 년에 5백이 채 안 되는 금액이었고, 심지어 더 낮은 금액을 써도 일정 기간 VIP 혜택을 이용할 수 있었다.



돈을 쓴다는 건 어떠한 권위를 사는 것일까?



  내가 근무하던 첫날이었다. 이 백화점은 VIP 등급은 타 지점 이용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A 지점 VIP로 등록된 고객이라면 B 지점의 VIP 라운지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아예 VIP 혜택 쿠폰 자체가 사용이 안된다. 어떤 중년 부부가 라운지를 방문했었다. 이 고객은 다른 지역 백화점의 VIP였지만 "다른 지점은 해주던데~" 마인드로 방문했다.


"내가 XX 지점 VIP인데 여기 안되나?"

"고객님, 해당 지점만 이용 가능하십니다."

"여기는 그런 말 없던데? 다른 데는 다 해주던데... 문자도 보니까 뭐 백화점 지점이면 이용 가능하다며"


  라운지는 판매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매뉴얼 이상의 서비스가 나가면 안 되었다. 내가 주고 싶다고 해서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방문하는 모든 고객 수와 나가는 재고는 카운팅 되고 있었고 내가 할 일은 그저 매. 뉴. 얼. 대.로 고객 응대하고 커피를 타드리는 일과 어느 정도의 친절함을 보이면 되는 거였다. 마음대로 되지 않던 그 남성 고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뒤에 있는 고객들마저 웅성웅성대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랑 같이 일하던 선임이 나서서 사과를 했다.


"내가 VIP인데 안돼?!?! VIP라고!! 니들이 준다매!!! 이까지 왔는데!!!! 아~진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매니저님 오고 계십니다. 저희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고성과 욕설이 오갔던 것만 기억난다. 영문도 모른 채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를 해야 했다. 매니저 콜 하고 손님을 진정시켜야 했다. 우리가 일단 잘못했고 다 죄송하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잘못한 걸까?? 우리는 정말 잘못한 게 없다. 우리가 VIP를 뽑는 것도 아니고. VIP로 선정되셨다는 문자를 보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최저 시급이나 받는 알바 나부랭이일 뿐인데 도대체 왜...? 잘못이라면 단지 돈 벌려고 하는 게 잘못인 걸까..


단지 해프닝 하나가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