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중3 아이들 입시를 앞두고...
고요 속의 불안, 엄마의 하루
오늘 아침 둘째 아이 예고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왔다. 큰아이 때도 서류제출은 해 봤지만 새삼 기분이 묘하다. 혹여나 가는 길에 사고라도 날까 봐 1시 반에 중요한 회의가 있다는 남편에게 동행해 주길 부탁해서 같이 다녀왔다. 이건 정말 잘한 것 같다. 입학원서 제출하러 가다가 차사고가 나서 힘들었다는 이웃언니의 얘기를 듣고 여건이 된다면 꼭 누군가 같이 가는 게 좋을 듯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나 제출기한 임박해서 갈 때는 아이든 부모든 같이 가기를 권한다. 사고를 정리하고 처리할 동안 한 사람은 서류접수를 하러 갈 수 있으니...
일주일 뒤면 둘째 아이 고입실기 시험이 있고, 한 달 뒤면 큰아이는 수능을 본다. 제법 해가 짧아져서 큰아이 스쿨버스 타러 나가는 6시 반이면 이제 어둡다. 둘째 아이까지 등교하고 나면 하루종일 쓸 시간은 정말 많은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예전 같으면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시시껄렁한 것까지 카톡으로 수다를 떨고, 본격적인 얘기는 통화를 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한지라 다들 아이들이 고3이다 보니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생각하며 전화통화도 잘 안 한 지 오래다. 친구가 넷플릭스에 새로 시작한 드라마가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볼 수 있다고 그거나 보란다. 그 대답에 나는 "너는 뭐가 재미가 있어? 지금 내상태가 뭐가 좋은지, 뭐가 재밌는지, 뭐가 맛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마치 무생물 우리 집에 있는 소파나 화분 돌덩어리 같아." 누구는 수능 작정 새벽기도도 하고, 자식 잘되라고 물고기반지도 사서 끼고 정성을 다하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해 지지가 않지? 혹여 나의 정성이 부족해서 아이들 결과가 조금의 영향이 미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렇게 구체적인 생각도 잠시 뿐 다시 멍하게 하루를 보낸다. 갱년기에 맞는 환절기라서 그런지 몸이 너무 힘들어 잠만 자도 자도 쏟아지게 올뿐이다. 비교적 다른 아이들에 비해 두 녀석 다 미술전공, 영화연출 전공으로 각자의 꿈을 빨리 찾아 노력하는 아이들이니 마냥 대견할 법도 한데 욕망덩어리 엄마는 그 마음만 오롯이 있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잘하는 애 위에 더 잘하는 애 그 위에 독한 애도 있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럭저럭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내고 겨우 아이들 올 즈음 혼신의 힘을 다하는 마음으로 딱 한 끼 밥을 준비한다. 오늘은 소고기와 낙지 무와 각종 버섯을 넣고 전골을 끓이고, 제육볶음에 전복장을 썰어 전복껍데기에 담아 내주었다. 김과 김치, 어묵볶음, 콩나물 무침등의 밑반찬과 함께... 이게 내가 입시를 코앞에 둔 아이들에게 해 주는 최선이다. 일과를 마치고 10시쯤 귀가한 아들은 뜨끈한 소고기 낙지전골을 먹으며 걸출한 아저씨 소리를 낸다. "캬 술은 안 마셔봤지만 해장되는 느낌이다. 시워언 하다" 말은 이쁘게 한다. 이렇게 하루 한 끼 한 그릇 맛있게 먹어주면 고맙고 내 소임은 잘 해낸 것 같다. 내 마음이 불안과 초조 동요 없이 잔잔하고 고요했으면 좋으련만 며칠째 위경련이 올라고 해서 진경재를 먹는 중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불안한 엄마의 마음이 조금만 들켜지길 바라며 (이미 충분히 다 알겠지만 ) 빨리 이 입시가 끝나고 올해가 잘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나는 지금도 힘 빡 준 하루 한 끼 내일의 메뉴를 고민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입시를 치르는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님들 으쌰으쌰 화이팅 나한테도 화이팅 응원의 말을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