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61 댓글 8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4학년 아들 혼자 떠나보낸 필리핀 어학연수 #01

아들은 즐기고, 엄마는 배운다.

by 방혜린 Feb 07. 2025

한낮이라도 1월의 겨울바람은 매섭다. 

추워서 따뜻한 집에만 머물고 싶을 법도 한데 아이들은 언제나 에너지가 넘쳐나서 집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 

나는 오랜만에 좀 걸을까 싶어 약속 장소로 빠르게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었다.

'딱 따다 다닥 똑 또로로록'

산책 나온 너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사내아이가 크고 작은 돌을 잔뜩 주워와 꽁꽁 얼어붙은 공원 길바닥에 던진다.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고 저지한다.


"엄마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듣기 좋아, 소리가 다 달라. 재밌어."


나는 뒤돌아서 아이를 한번 힐끔 보았다. 

이 세상 모든 게 흥미롭고 장난감이었던 어린 시절 우리 아들이 생각이 났다.


주여 감당할 시련만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셨습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들. 

그에 비해 턱없이 작은 그릇인 나.

호기심 천국인 어린 아들이 감당하기 벅차서 밤마다 흘린 눈물이 한 트럭은 될 것이다.

무한긍정 에너지를 Full 장착하고 태어난 나의 막내 우리 아들은 예민해서 신생아 때는 

10분 이상 자는 법이 없었다. 

성격이 많이 급한 편이다.

 겁이 나거나 위축이 되면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지며 목소리도 행동도 커진다. 

그럴 때면 실수 연발이다. 방어기제가 증폭되어 작용한 것인데 

막상 어릴 때는 나도 미숙해서 아이가 왜 이런지 당황스럽고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예민한 반면 의외로 낙천적이고 어디에서나 

분위기를 밝게 이끈다. 

쾌활하고 유쾌하며 외향적이라 

사람을 좋아한다. 

특히나 아들은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장점을 잘 찾아내서 좋은 점만을 보려 했다. 

이 점은 지금도 아들에게 배울 점이다. 

웃음이 많고 행동이 재빨라 실수도 많지만 뭐든 도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모든 도전에 주저함은 없지만 욕심도 없어서 힘을 쫙 빼고 한다. 

 "내가 스케줄 100개를 세팅하면 너는 100개를 다 할 아이야"

내가 항상 우스갯소리로 아들에게 하는말이었다. 모든 배움에 스트레스나 욕심이 없으니 부담도 없다. 

주변 다른 엄마들은 아이 학원 하나 더 보낼라 치면 달래고 얼르고 밀당을 여러 날 해야 한다고 나를 부러워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도 있지만, 열을 가르쳐도 그저 즐기기만 하는 아이 엄마의 벙어리 냉가슴 말 못 할 심정을 알기나 할까? 

당연 성과나 성취는 엄마의 기대치에는 언저리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미비하지만 아들은 모든 걸 그냥 즐긴다. 그리하여 아들의 모든 배움은 휘발성이 많아 남는 게 거의 없다. 

모든 시작은 쉽고 그저 즐기기만 할 뿐 남는 게 별로 없어 가끔은 그럼에도 지속해야 하나 고민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냥 쿨하게 

'네가 행복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라고 해버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나는 뒤끝이 아주 많고, 

속물근성 드글드글한 아주 평범한 엄마임을 이미 아이들에게도 들켜버렸다. 

발 연기라도 해서 끝까지 안 들키면 좋았겠지만 연기부족인지 들켜버려 아쉽다.  


다만 좀 의아한 건 시작은 쉬운데 끝내는 건 어려웠다. 

그게 수업이 좋아서 인지 사람이나 관계가 좋아서 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어릴 때 시작한 남는 것도 별로 없는 모든 수업을 아들은 지속하고 싶어 했다. 오히려 학원하나 끝내는데 얼르고 달래고 산 넘고 물 건너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  


'하아~ 뭐든 남들과 다른 너란 

녀석을 특별하다고 봐야 하나?' 


초등학교 내내 아들 친구 엄마들은 성격 좋고 잘생긴 아들을 두었다며 나를 부러워했다.

중학생인 지금도 매 년 봄, 가을 새 학기마다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선생님들은 우리 아들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신다.  


'감사합니다만 이제 알겠고요. 

우리 아들 성격 좋은 건 내가 십수 년 

키워봐서 너무 잘 알지요. 

다만 아들의 학습적 동기부여가 

이제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선생님께 큰소리로 외치듯이 '이 엄마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속으로 수십 번 얘기했다.


걱정과 고민을 에둘러 털어놓으면 모든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아들은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뭐를 하더라도 성공할 거란다. 정작 나에겐 공수표 같은 저런 말들이 점점 위로도 되지 않고 신뢰도 떨어져 가고 있었다.  


며칠 전 아들이 중학교 졸업식을 하였다. 

3학년 내내 아들의 꿈을 응원하며 독려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전하러 꽃다발을 준비해 교무실 들렀다. 선생님을 보자마자 아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마치 사랑 고백하듯 선생님께 꽃을 드렸다. 선생님이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아들은 일으켜 안아주었다. 

나에겐 아들을 만나 너무 행복했다며 예쁜 아이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하셨다.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아들은 뒤돌아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큰절을 한다.


'하아~ 이렇니 안 예뻐 할 수가 있나? 

집에서 보는 내 아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란 말인가?'  


돈을 주고 공부를 하라고 보낸 사교육 학원 선생님들도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평가하는 말들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머리가 좋아서 이해를 잘하니 공부를 안 해도 상위권을 대충 유지한다. 

그게 결국 발목을 잡는 아주 몹쓸 상황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떨어지고 학습에서 만큼은 나의 걱정이 더 깊어져만 갔다.  


아들은 이렇듯 단점과 장점의 구분이 선명하다. 

엄마라서 엄마니까 아들의 장점만을 키워 주고 좋게 봐주면 좋으련만, 

부족한 애미는 아이의 단점 때문에 항상 힘들고 고민이고 걱정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단점을 보완하고 커버하려 노력하면서 아이보다는 내가 성장하고 배운 게 많다. 

그리고 이건 지금도 진행형이다. 정작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었는데 내 두려움이 더 컸었고 고민이 깊었다. 

내 두려움과 고민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어도 느껴졌을 그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때로는 아이들에게 불안함을 준 것 같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미숙했음을 인정하고 용서와 이해를 구하고 싶다.  

나는 본능적으로 엄마인 내가 많이 부족함을 알아서였을까? 

이것도 내 욕심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독서든 여행이든 체험이든 직 간접적으로 한 번이라도 더 경험을 해 주고 싶었다. 육아휴직 후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아지면서 아이들과 해외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해외여행은 아들 성격의 최고 장점 서스름 없음이 여실히 반영되어 극대화가 되었다. 

아들은 어디를 가도 현지인처럼 적응하였다. 남녀노소를 막 논하고 생김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것 따위는 아들에게 별 다름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특유의 넉살 좋음으로 모두가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과 사이판 첫 해외여행을 시작으로 많게는 1년에 4번까지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아들은 어느 순간부터 해외에 나가는 것에 대한 조금의 이질감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사이판 여행에서는 퍼시픽 아일랜드 클럽 일명 PIC에서 숙박을 했는데 키즈클럽이 잘되어 있어 아이들과 시간대별로 게임, 다양한 스포츠, 액티비티 체험을 진행한다. 

저녁에는 원주민 전통 공연도 하고 종일 그곳을 방문한 여행객을 즐겁게 해 준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여행내내 붙어다닌 신라면형아와 아들여행내내 붙어다닌 신라면형아와 아들

당시 여섯 살이던 아들은 예상대로 그곳에서도 모든 스텝들에게 "하이~굿모닝~베뷔~"남발하고 다니며 알고 있는 짧은 영어와 손짓 발짓이 다 나온다. 가이드를 형님 만들고, 남자 크루들을 친구 만드는 친화력 최고의 아들을 예뻐한 키즈클럽에 한 직원이 자기 이름을 신라면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하도 많이 오니 친근하게 다가가려던 직원의 재치 있는 작명센스였나 보다.  다음날부터 눈뜨자마자 신라면형아를 만나러 나간다고 서두르고 그 직원도 아들을 있는 내내 데리고 다니며 이런저런 놀이를 체험시켜 주고 살뜰히 챙겼다. 결국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신라면 형이 보고 싶다며 울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기억이 난다.


 아들 초등학교 1학년때 하와이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비행시간도 길고 힘들었는데 아들은 첫날부터 호텔수영장에서 늦은 저녁까지 수영을 했다. 

다음날 아침 조식도 먹기 전에 또 수영을 하러 나간단다. 

너무 피곤해서 말리고 싶었는데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단다. "친구? 누구?"라고 물으니 어제 같이 수영한 아빠가 군인이고 온 가족 휴가를 온 일본인 친구와 미국본토에 사는 여행 온 친구를 만나기로 했단다. 그런 건 어떻게 알았을까? 다 알아들은 건가? 혼자만 한 약속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따라가서 아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pool로 내려가는 계단에 서서 또래로 보이는 아이에게 "How old? You age?" 물어보고 비슷하다 싶으면 "fridend? Ok?" 한다.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물감처럼 번지며 다 알아듣는다. 신기하다.


놀 때도 별 말 안 한다. "rock-paper-scissors, splash 풍덩, out, Ok?" 별말 아닌데 아이들이 게임인지 규칙인지 다 알아듣고 또 재밌게 논다. 우와~신기하다.  


그렇게 아들은 하루하루 밖에서 놀고만 오면 친구들을 또 사귀고 연락처까지 받아오곤 했다. 

아들에게 친구를 사귀고 의사를 소통하는데 영어의 어휘나 문법 창피함 따위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스스로 어느 순간 영어를 잘한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보기엔 아는 단어 몇 개와 몸짓 ok?로 모든 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굳이 아들에게 답답하지 않냐고 공부를 좀 더 하는 건 어떻냐고 말하진 않았다. 

어디를 가든 그곳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아들을 보며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시간이 있을 때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여행을 다녔다. 


언젠가 우리 아들이 전 세계를 동내 골목처럼 누비며 

영화감독인 본인의 꿈을, 삶을, 인생을 펼치기를 마음속 깊이 응원하면서......

이전 23화 요리의 추억 #03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