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보고 싶으면 어쩌지?"
아들이 4학년이 되고 어느 날 우스갯소리였는지 진심이었는지 모를 말을 내게 흘리 듯한다.
나는 미국에서 학교 다니고 싶어. 그곳이 나하고 맞는 것 같아.
이유를 물었는데 정확한 표현은 생각이 나진 않지만 미국의 교육분위기나 환경은 서로 비교를 하지 않고 각자 잘하는 것에 응원을 잘해준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응 그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대답하고 보니 갑자기
'미국에 못 가라는 법은 또 뭐야?
미국이 뭐 달나라도 아니고 지구촌 시대에 글로벌하게 전 세계를 무대로 성장하는 아이들인데 갈 수도 있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그 흔한 지인이나 친척이 사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계획이나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턱대고 미국으로 먼저 보낼 수 없으니 겨울방학을 앞두고 아들에게 필리핀으로 혼자 먼저 어학연수를 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아들은 두 번 생각 안 하고 너무 좋아했다.
그때부터 딱 2주 동안 기관을 소개받아 선정하고 필리핀 어학연수 준비를 하고 아들을 떠나보냈다.
아들이 어학연수를 간 곳은 필리핀 클락이라는 곳이고 우리나라의 여의도 같은 증권가가 몰린 금융 도시라고 했다. 가는 날 공항에서도 아들은 마치 해외여행 가듯 연신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이며 그렇게 씩씩하게 떠나갔다. 공항에서 어린 아들을 짧게나마 떠나보내며 눈물이 주책맞게 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드라이한 안구를 지켜내었다. 아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기간도 6주라 길지 않고 끝나는 날에 맞춰 딸과 함께 필리핀으로 넘어가 일주일정도 여행하고 오려고 비행기 티켓팅까지 해놓았다. 애착인형 강아지만 있으면 된다며 살뜰히 챙겨 호기롭게 떠난 아들은 정확이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 낮에 울면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엄마 보고 싶은데 어쩌지?
그렇게 씩씩하게 뒤도 안 보고 가더니...... 꺼억꺼억 우느라고 말도 잘 못한다
엄마 사진 보면 되지~
핸드폰을 저녁에 딱 한 시간만 사용할 수 있어서 못 봐
멍멍이 꼭 끌어안고 있어, 곧 만나자~
이내 현지에 동행한 한국인 생활 선생님이 전화가 왔다.
아이가 요리시간에 만든 도넛을 먹고 체해서 토하고 열나고 힘들었다고 한다.
괜찮은 척하지만 예민한 아들은 그곳에 혼자 적응하느라 한바탕 몸살을 하는 듯했다.
필리핀은 의료시설이 우리나라처럼 잘 되어있지 않아서 민간요법으로 도와주었다고도 했다.
열이 나는데 비타민을 잔뜩 먹이고 현지 도우미가 아이를 엎드려 놓고 마사지를 해주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체했을 때 손을 따고 등을 두드리는 우리나라의 민간요법 같은 것인가 보다.
잘 지켜보고 있으니 걱정 말란 이야기도 덧붙였다.
다음날은 주말이라 아이들이 인근에 있는 워터파크를 갔다.
우리 아들은 열이 안 떨어져 물놀이는 못하고 썬베드에 쭈그려 앉아 구경하고 있는 사진도 보내왔다.
한번 몸살을 앓고 나더니 아들은 또 여느 때나 다름없이 현지에 완벽 적응하고 더 이상 나를 찾지도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해외 어학연수에 부모 동행이 아니기 때문에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처음이라 잘 몰라서 출국 전날 또는 당일까지 준비하느라 바빴다. 잘못하여 보딩 전까지 서류가 준비되지 않으면 출발을 못하게 될 수 있으니 꼼꼼히 계속 준비사항을 체크해야 한다.
혹시 초등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아이나 엄마를 위해 내가 놓쳐서 마지막까지 준비하느라 애를 먹었던 또 미리 준비하면 좋을 기억나는 몇 가지를 적어본다.
내가 경험 한 아이 혼자 떠나는 어학연수 준비사항 10가지
어학연수를 받을 아카데미 또는 기관이 결정되면
첫 번째, 해외에 미성년 아이가 부모와 같이 나가는 게 아니라면 동행하는 어른이 같이 출국하더라도 공증을 받아야 한다. 일종의 공식적으로 인증받은 위임장 같은 서류를 공증비를 따로 내고받아야 한다.
두 번째, 필리핀 통관비도 따로 내야 하니 준비를 해주어야 한다.
세 번째, 여행자 보험도 꼼꼼히 챙겨야 혹시 사고나 질병이 났을 때를 대비할 수 있다. 이건 학원에서 단체로 하기도 하고 개인이 알아서 따로 하기도 하니 미리 문의해서 준비해야 한다.
네 번째, 용돈을 각자 준비해 주는데 어린아이들일 경우 용돈이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분실을 하거나 탕진잼을 하기 일쑤다. 원장님이 일주일에 얼마씩 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그래도 비상금을 꼭 챙겨주어야 한다. 나중에 아들에게 들었는데 비상금을 일절 주지 않아 마켓이나 쇼핑몰에 놀러 갔을 때 극장에 영화 보러 갔을 때 혼자 거지꼴을 면치 못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에게 팝콘을 얻어먹고, 사고 싶은 선글라스를 돈을 빌려 사는 등 윈도쇼핑만 실컷 했다는 후문.
다섯 번째, 어학연수 전 후로 현지 선생님과 화상 영어수업을 서비스로 진행해 준다. 이 부분은 학원마다 원장의 재량이 충분히 반영되니 어학원 선정할 때 미리 이야기를 잘해서 넉넉히 서비스를 받으면 다녀온 후에 현지 선생님과 유대관계가 있어서 계속 자연스럽게 회화를 할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여섯 번째, 가기 전에 가는 나라, 지역에 대해 아이와 미리 대화해 보고, 찾아보고, 공부해 보는 게 좋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필리핀 여러 곳에 여러 번 가 보았지만 혼자 가는 만큼 본인이 어디로 가는지는 정확히 알고 떠나는 게 좋고, 다녀와서도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다.
일곱 번째, 식단이나 음식을 미리 꼼꼼히 체크해 본다. 혹시 알레르기가 있으면 미리 정보를 주어야 한다. 필리핀 가기 전 아들이 팬케이크를 좋아해서 한 번씩 간식으로 해서 토핑을 얹어 주면 잘 먹었는데 다녀와서 질색을 하고 안 먹는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생각도 못했는데 매일아침 시리얼과 가장 많이 먹은 게 팬케이크라고 했다. 질려버려서 당분간 냄새도 맡기 싫다고 했다. 혹시 다른 메뉴나 식단이 부실할 수 있으니 한 번쯤은 관심 있게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여덟 번째, 혼자 어학연수를 보낸다면 너무 어린 나이는 비추천이다. 특히나 짧은 일정으로 간다면 실은 아니더라고 가성비 득이 많지 않다.
아홉 번째, 아이가 미리 컴퓨터 특히 파워포인트정도는 어느 정도 다룰 줄 아는 게 좋다. 연수가 끝나고 마지막에 아이들이 선택한 주제로 글을 작성해서 발표를 하는데 같은 학년이라도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아는 아이들은 발표 자료도 잘 만들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한글에 작성하여 종이 프린트를 들고 발표하니 비교가 많이 되었다.
열 번째, 가기 전 짐은 스스로 또는 같이 쌓는 게 중요하다. 오롯이 엄마 혼자 짐을 싸주면 막상 가서 본인이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잘 몰라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고, 사용 후 잘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가기 전 새로 산 수영복이나 옷가지를 본인 것이 아닌 줄 알고 놓고 오는 경우도 많다. 꼼꼼하지 못한 남자아이일수록 더욱 짐을 쌀 때 같이 쌓는 게 좋다.
어학연수는 영어뿐 아니라 가는 곳의 문화도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나는 필리핀이 의외로 아이들이 농구를 많이 하는 나라라는 걸 아이가 연수 가서 알게 되었다.
가기 전에도 고양 오리온스 농구클럽에서 매주 농구를 했었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는데 오히려 필리핀에서 스트릿 농구에 맛을 들여왔다.
수영은 매일 하고 골프도 치고, 수상스키도 즐기며 다양한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어학연수를 간다면 가기 전에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설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미리 영어공부가 잘 된 친구는 회화가 많이 늘어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단 6주의 어학연수로 크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학교 성적과는 전혀 무관하니 학습적인 걸 기대한다면 방학을 이용한 필리핀 어학연수는 적극적으로 비추천한다. 아이에게 의사소통으로서의 영어의 기능적인 동기부여는 충분히 될 수 있다.
또 다녀와서의 영어공부 계획이나 방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영어회화에 흥미를 잃지 않고 지속시킬 수 있다.
어학연수가 거의 끝나갈 때 즈음 전 세계적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COVID-19가 급습한 것이다. 필리핀은 의료체계가 좋지 못해서 외부인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바로 차단하였다. 아들도 겨우 한국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 겨울 아들을 데리러 간 인천 공항은 매우 분주하고 정신없었다. 아들은 새까맣게 타고 조금은 말라있었다. 쪼리를 신고 마스크를 하고, 양손에 비닐장갑을 낀 채로 정말 거지꼴로 게이트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공항에서 아들을 물에서 건지듯 데리고 나왔다.
그때만 생각하면 조금만 대처가 늦었어도 필리핀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어린 아들과 기약 없는 이산가족이 될뻔했으니 아찔하다.
다행히 아들은 아직까지도 외국어를 말하는 거에 걱정이나 창피함이나 고민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 잘하는 줄 아는 모양 같기도 하다. 사실은 잘 못하는데..... 하지만 무엇이든 도전한다.
이 점이 가장 예쁘다. 중학교 1학년때 일이다. 하교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아들이 전화가 온다.
학교에서 영어 말하기 대회에 도전해서 예선에 붙어 본선 진출을 하게 되었단다.
처음 듣는 얘기였고 그 대회가 그리 큰 대회인지도 몰랐다. 본선을 치러야 해서 영어학원에 늦거나 못 갈 수 있으니 학원선생님께 대신 연락을 해 주라고 했다. 나는 학원 가기 싫어 꼼수를 부리는가 싶어 버럭 화를 냈다.
이눔아~~ 그런 건 뭣하러 신청해서 학원을 또 못 가는 것이야~~~
그날 결국 아들은 영어학원을 가볍게 패스하고 느지막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영어 말하기 대회를 한 시기가 늦 봄쯤이었는데 여름방학이 지나고 9월 말쯤 아들이 가방 밑바닥에서 꼬깃꼬깃 접힌 상장을 발견하고 나에게 건넨다.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에 도전하여 수상을 한 것이다.
뭐든 엄마인 나와 2인 1조로 계획하고 준비해서 도전하는 딸과는 달리 아들은 뜬금없다.
본인이 하고 싶은 거에는 스스로 움직여 도전한다.
재 작년 일본 후쿠오카 여행에선 식당을 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쇼핑을 할 때고 혼자 씩씩 웃고 단어 한 마디씩을 한다. "너 뭐 좀 알아들어?" 물으니 반은 들린단다.
그렇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더니 일본어 귀가 트였나 보다. 웃픈 현실이었다.
아들은 발권을 하고 팝콘 콤보세트를 사서 당시 전 세계 동시 개봉한 '마리오브로'를 일본 현지 극장에서 혼자 보고 왔다. 소통의 기능으로서의 언어를 습득하는 데는 최적의 서스름 없는 성격을 갖은 아들은 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 중에서 영어를 젤 못한다. 꼭 주는 문제 하나, 문법 하나, 실수 하나 무슨 약속이나 한 듯 중학교 내내 필기고사에서 3개씩 틀여왔다. 그래도 영어회화에 있어서 자신감만큼은 잃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