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도 아니고 운동치도 아닌 나의 운동 라이프
어린 시절 현대무용을 잠깐 배웠다.
나는 유난히도 작은 체구에 유연하기도 했고, 리듬감도 좋았다.
어렸지만 무엇보다 선생님이 알려주시면 작품이 쏙쏙 잘 이해가 되었다.
몸을 사용해 표현하고 움직이는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 당시도 예체능을 하려면 부모님의 밀착 지원과 지지가 있어야 했다.
프로그램이 하나 연습에 들어가면 대회가 끝날 때까지 간식비에서부터 헤어 메이크업 하다 못해 버스 이동비까지 크고 작은 부대비용이 쏠쏠하게 발생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니 나만을 위해 따라다니며 살뜰히 챙김을 받는다는 건 언감생심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본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무용복을 맞춰야 하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게 비쌌다.
군무로 시 대회에 한번, 도 대회에 한번 무대에 참여하고는 나는 더 이상 무용을 하지 못했다.
하루는 엄마가 나에게 무용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당시 집안 형편이 예체능을 시키키엔 힘들 거라는 걸 나는 눈치가 빨라서였는지, 지금으로 말하면 K 장녀 신드롬이었는지 딱히 이유를 듣진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바로 수긍하고 그날로 무용을 그만두었다.
마음에 돌덩어리가 쿵 하고 발등으로 내려 찍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 말을 하고 뒤돌아 오면서 뺨을 타고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너무 하고 싶다고 나 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라고 어느 누구에게도 내색하진 않았다.
선생님은 몇 번이나 나를 불러 설득하였고, 엄마에게 전화도 하였지만 결국 나는 무용을 그만두었다.
이게 내가 몸을 써서 무언가를 해 본 처음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는 중고등 학창 시절 입시를 계속 치르느라 딱히 운동을 하지는 못했다.
다시 운동을 시작한 건 졸업을 하고 백화점 영양사를 할 때였다.
엄마는 내가 아기 때 귀앓이를 심하게 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겁이 많아서인지 유독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그 공포를 극복하고 싶었다.
퇴근 후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전문 강사에게 배우니 발차기도 하고, 호흡도 하고, 배영을 하니 꽤나 재미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직도 물이 무섭다.
수영을 할라치면 큰 맘을 먹어야 한다. 수영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강습이 있는 날은 끝나서 집에 갈 때면 너무 허기가 져서 엄마에게 이런저런 먹거리를 전화로 주문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공룡처럼 음식을 흡입하였다.
아마도 내 기억엔 출산 직전과 맞먹는 내 생애 최고의 몸무게를 그때쯤 달성했다.
식욕이 너무 좋아 수영을 지속한다면 내 몸이 끝도 없이 부풀어 오를 것 만 같았다.
발에 실을 달아 내 몸을 공중에 띄우면 풍선처럼 날아가던지 빵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혈기왕성에 발란스를 맞춘 식용왕성을 컨트롤하기엔 의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더 이상 수영을 지속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는 스포츠 센터에서 헬스를 하였다.
이미 너무 쪄버린 살을 뺄 목적으로 다닌 헬스클럽에선 수영을 그만둬서 인지 운동을 열심히 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조금씩 살이 빠졌다. 다행히도 이전 몸무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복병이 발생했다. 그곳에는 남자 트레이너가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큰 키에 얼굴도 작고, 피부색도 하얗고, 꽤나 잘생겨서 당시 GV2라는 유명 패션 의류 지면 모델로도 활동을 한다고 했다. 성격도 좋아서 항상 회원들의 컨디션을 물어봐 주고, 먼저 다가와 운동법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또 다른 한 명은 키가 좀 작고 머리는 스포츠로 짧게 잘라서 눈코입 생김부터 모든 게 동글동글 귀여운 인상의 트레이너였다. 생김과는 달리 그분은 꽤나 사무적이고 시크해서 웃는 표정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물어보기 전에는 먼저 와서 말을 하는 법도 거의 없었다.
나와 같이 운동을 다니는 직장 동료가 트레이너 중 한 명을 짝사랑하게 되었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오지랖이 작동하여 자처해서 사랑의 오작교 역할을 하였다.
트레이너에게 말을 걸고 친해져서 운동 끝나고 밥 한 번씩 먹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술자리까지 갖게 되어 동료의 마음을 진솔하게 전했다.
얼마나 내가 대견하던지 '착한 일 했으니깐 복 받을 거야' 하면서 내가 나를 셀프 칭찬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역할은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의 동료가 좋아하는 트레이너는 키 작은 동글동글 시크한 분이었고, 내가 지레짐작으로 그녀의 마음을 전한 사람은 키 크고 잘생긴 트레이너였던 것이다. 이럴 수가 이렇게 큰 실수를 하다니 정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모두에게 너무 미안해서 결국 나도 나의 동료도 그곳에서 운동을 지속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 동료는 나중에 좋아하는 마음을 당사자에게 전했는데 마음이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고 했다.
내가 20대 후반이던 시절 그러니까 2002년에서 2003년 MBC TV 일일드라마 '인어아가씨'가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자랑하였다. 드라마 속에서 주연배우 장서희가 살사댄스를 춰서 인기를 끌었다.
그 영향으로 라틴댄스 중 특히 살사댄스가 대 유행하였고, 나는 막연히 스포츠댄스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서희가 춤을 배운 곳이 어디인지 온라인으로 알아보고 퇴근 후 매일 저녁 홍대 근처 연습실과 BAR로 살사댄스를 배우러 다녔다.
열정적인 라틴음악에 맞춰 파트너와의 호흡이 중요한 살사댄스와 메렝게, 줄을 맞춰 서서 다 같이 같은 춤을 추는 라인댄스는 스트레스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 듯 확 풀렸다.
사랑을 온몸으로 끈적끈적 표현하는 라틴스타일의 살사가 있는가 하면, 꽤나 젠틀하고 매너 있게 추는 뉴욕스타일 살사가 있다. 또 사람에 따라 리드하는 방식이 다르다.
리드하는 데로 잘 따라가려면 코어도 잘 잡혀있어야 하고 베이직을 잘해야 한다.
그래서 초보는 매일 거울 앞에서 베이직연습을 많이 한다. 뭐든 기초가 튼튼해야 그다음 스텝을 나가는 법이니 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초가 어느 정도 잘되면 기술도 배우고 여자는 박자를 쪼개어 춤을 화려하게 보이는 일명 뽐내기 스타일링을 한다. 어린 시절 끝까지 못다 한 춤에 대한 마음과 미련이 어느 정도 해소도 되는 것 같아 폭 빠져들었다.
그때쯤 소개로 만난 구 남친 지금의 남편에게 나의 취미가 살사댄스라고 얘기를 하니 너무 좋은 취미라며 기회가 되면 본인도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고 춤추러 가는 시간보다 남편과 놀러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2년의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결혼을 했다.
너무 좋아 본인도 배워보고 싶다던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나의 댄스화를 꽁꽁 숨기고 춤추러 가는 걸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사랑의 눈이 멀었던지 남편이 굳이 싫어하는 일을 고집하여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결혼 전 2년 동안 부천에서 홍대까지 먼 거리 마다하지 않고 매일 다니며 열심히 배운 나의 스포츠댄스도 이렇게 그만두게 되었다.
한참 후에 다시 시작하게 된 나의 다섯 번째 운동이 요가였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요가 붐이 불고 있었다.
나 역시 트렌드에 뒤질세라 직장 근처에서 점심시간을 할애해 몸의 라인 좀 살려 보겠다고 요가수업을 들었다. 요가는 호흡이 중요하다고 했다. 끊임없이 숨을 내쉬고 마시고 호흡에 집중하라고 한다.
짧게나마 무용한 여자라서 인지 타고난 유연성을 자랑하며 짜란다짜란다 해 주니 우쭐해서 더 열심히 운동을 했다. 열심히 따라 하면 요가학원 벽에 붙여진 사람들처럼 예쁜 몸매를 가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잔뜩 갖고 점심밥도 반납하고 열심에 박차를 가했다.
어느 날 밥을 안 먹어서 인지 과호흡으로 띵하게 어지럽더니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땅이 막 올라왔다.
그다음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잠깐 쓰러진 건지 앉아서 정신을 차린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러다가 내가 몸매 만들기 전에 저승사자 먼저 만날까 싶었다.
요가 선생님도 더 이상 운동을 권하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