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건강의 경계에서 적당함의 철학
두 번의 출산과 육아로 살이 찌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가뜩이나 저질인 체력도 더욱 약해져서 매일 잇몸에 피고름이 차오르고 입술이 찢어지고 다크서클이 발목까지 내려와 있는 상태였다. 이러다가는 내가 제 명에 못 죽지 싶어 다시 시작한 운동이 에어로빅이었다.
육아로 인해 지쳐있기도 했고, 서울에서 죽전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는 사람도 없었던 나는 빠르고 흥미로운 노래에 맞춰 몸을 마구 흔들어대는 에어로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춤이라면 나도 영 자신 없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 큰 오산이었다.
"완 투 뜨리 앤 포, 왼 오 왼 오 턴
어머님이 누구니~~둠짓 둠짓 "
작아지는 내 모습 동작도 안 예쁘고 왜 이렇게 순서는 안 외워지는지... 혼자 버벅대고 남들 오른쪽으로 돌 때 혼자 왼쪽으로 돌고 자빠져있다. 거울 속 내 모습 너무 초라해 보이고 자신감이라곤 즙으로 짜내어도 한두 방울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하아~' 우울했다. 그럴수록 한없이 더 작아졌다.
예쁜 옷을 입고 운동을 하면 좀 나을까 싶어 옷도 잔뜩 샀는데 세상 어색하고 민망하여 입지는 못했다.
사실 집에서 입어보고 혼자 빵터져서 누가 볼까봐 바로 버린 기억이다.
에어로빅은 꾸역꾸역 10개월 채우고 그만두었다. 그 사이 또 체중이 증량하여 토실토실 엄마 돼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군것질을 종일 달고 살았고, 야식에 남편과 육퇴 후 한잔씩 하며 즐기는 안주가 팔뚝에 옆구리에 엉덩이에 덕지덕지 살이 붙어 힘들었다.
그 이후로도 빠른 음악에 맞춰 시종일관 뛰면서 글러브를 끼고 잽을 하는 복싱다이어트, 트램펄린 위에서 코어를 잡고 뛰면서 운동하는 점핑다이어트, 무한 반복 구르기와 나무 필로우를 가지고 내 몸의 무게를 이용하여 운동하는 SNPE 바른 자세 척추운동, 아줌마들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줌바댄스, PT까지 안 해본 운동이 없었다. 결국 내가 정착한 운동은 필라테스였다. 요가와는 또 다른 느낌의 필라테스는 코어와 속근육, 몸의 발란스를 잡아주는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이었다. 한참 운동을 하여 체력이 좋을 때는 점핑을 하고 한 시간씩 걷기 운동하던지, 필라테스하고 걷기를 했다. 일주일 내내 필라테스를 하러 가기도 할 정도로 꾸준히 5년째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만약 아프지 않았다면 필라테스 자격증에 도전해 볼까 할 정도로 진심이었고, 주변 인친들에게 여기저기 전파하는 필라테스 전도사였다.
코로나 시기에는 정작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잘 지나갔는데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오랜만에 온 가족 괌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비행기에서 아들이 코로나에 전염되고 말았다.
때문에 온 가족 코로나로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격리가 끝나고 일상생활로 돌아왔는데 컨디션이 회복이 되지 않았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고, 몸이 힘들었다. 결국 간단한 설거지나 방청소 같은 집안일조차 할 수 없어 병원에서 검사를 했다.
코로나백신 후유증인지, 코로나 후유증인지 모르지만 신장이 이미 50% 대미지를 입어 기능을 못하고 있는 신부전증이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음식섭취, 복약지도, 혈관관리 같은 주의사항을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사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발견 당시는 신사구체여과율이 4단계에 가까운 3단계이고, 4단계가 투석준비, 5단계는 통상적으로 투석의 수순을 밟는다고 하니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말이었다.
멍하니 사실 피부로 와닿지도 않는 허공에 메아리같이 흩어져버리는 말들처럼 느껴졌다.
신장이란 장기는 혈관 덩어리로 한번 망가지면 회복이 안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혈압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든 게 왜 알아야 하는지 모를 정보들이 한꺼번에 휘몰아 쳐 혼란스러웠다.
9월쯤 판정을 받고 운동도 바깥출입도 취미활동이나 각종 스터디모임도 모든 게 멈춰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우울했다.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아프다고 말하며 동정 어린 시선을 받고 싶지도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 나 아픈 거에 대해 위로와 응원을 받고 싶기도 했다. 양가부모님한테는 걱정할까 봐 말할 수도 없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2~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서 피검사 소변검사를 하고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 또는 유지되고 있는지 추적검사를 하며 평생 살아야 한다.
6개월 정도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가을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왔다.
나에겐 지켜야 할 가정이 있고, 그 해에 아이들이 중3, 고3 올라가 입시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적장한 운동을 권장하였던 생각이 났다. 병을 극복하고자 심기일전해서 다시 시작한 운동은 역시 필라테스였다. 운동을 시작하고 체력이 조금씩 올라오니 기분도 좋아졌다.
내가 열심히 운동하면 병 이까짓 것 못 이겨낼까도 싶었다. 식이요법도 열심히 했다.
욕심을 내어 PT도 시작했다.
'이 기회에 김포 핫바디 몸짱 아줌마 한번 돼 보는 거야!'
굳은 결심을 했다.
PT 받는 날 뿐만 아니라 받지 않는 날도 운동센터에 매일 나가 개인운동을 했다.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근력은 좋았다. 타고난 근질도 좋고 운동을 하면 근육도 금방 잘 붙었다.
그동안 매년 한 번씩 여러 차례 PT를 받아 봤지만 이번 트레이너는 나에게 욕심을 낸다.
또 무게를 올리거나 다른 동작도 시키는 대로 족족 잘하니 무게를 계속 증량하고, 푸시업이나 행잉 레그레이즈 등 운동의 갯수나 시간도 늘려갔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몸이 아프다고 느끼진 못했다. 이번 건강검진에선 수치가 많이 좋아져서 정상에 가깝다는 결과를 받고 싶었다. 받을 줄로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몸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이 앞서 무리한 운동을 한 것이다.
혈액검사를 통해 알아보는 심혈관 관련 검사항목 중 CPK의 수치가 비이상적으로 높게 나온 것이다.
CPK(Creatine Phosphokinase)란 크레아티닌 인산효소 라고 불립니다. 이 효소는 우리 몸의 뇌, 근육, 심장에서 발견되는 효소로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수치는 근육손상이나 심장 질환등을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로 사용됩니다. 만일 정상 범위를 벗어나 천 단위까지 치솟는 다면 근본 원인을 찾는 것을 권고합니다. 이는 심장 현관질환이나 심근경색, 동맥경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네이버)
CPK의 정상수치는 남성의 경우 0~189IU/L, 여성의 경우 0~169IU/L이다. 나의 수치는 정상범주에서도 한참을 웃도는 2507IU/L이 나온 것이다. 3년 전 54IU/L에 비해서도 거의 50배 정도 높은 수치였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당장 입원을 권유했다. 이유를 찾아야 했는데 가장 먼저 의심되는 것이 과도한 운동이었다.
요즘 헬스나 몸만들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과하게 운동을 하여 CPK수치가 2000이 넘어 종종 입원을 한다고도 전했다. 하여 무리한 운동을 수치상승의 첫 번째 원인으로 짐작하는 듯했다.
과유불급;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
이처럼 중용, 지나치지 않음 적당함이 중요하다. 그러나 적당함이란 참 어려운 것 같다. 평균을 한다는 거 중간만 간다는 게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개개인마다의 적당함이 다 다르니 그만큼 나를 더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병원에서의 가이드가 모호했다.
'적당한 운동이라니 어느 정도가 적당하단 말인가?,
운동을 하는 동안 나는 정말 건강해졌다고 100% 확신하고 있었는데...'
나의 열심으로도 바뀌지 않는다는 현실이 너무 참담하고 우울하고 속상한 심정이었다.
더 이상 어떤 운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또 한 번의 좌절로 한동안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은둔하였다.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 신발을 안 신은 지 몇 날며칠이었다. 내가 무너지면 영향받는 가족이 있으니 또다시 기운을 내야 한다. 살아 있으니 살아내야 한다.
지금은 컨디션을 고려하며 일주일 한번 내지는 두 번 무리가 되지 않는 적당한 정도의 스트레칭을 하는 가장 초급반에서 필라테스를 한다. 서글프다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살아있음을 운동하고 있음을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적당한 정도를 잘 찾아가며 내 몸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운동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