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 키즈카페에서 생일파티한 여자
나의 첫 독서모임은 오래전 해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추억 속에 선명하고 강렬하게 박혀있어 항상 그립다. 그때의 멤버들을 요즘은 자주 볼 순 없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에게 각별한 마음인걸 보면 나는 그 기억의 끝을 붙잡은 체 회상하고 위로받으며 사는 듯하다. 모임의 목적은 물론 독서였지만 우린 서로에게 단순히 목적 이상의 의미가 되어 주었다.
조금 늦은 40대 초반에 나는 첫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아들 유치원에 평소 친하게 지내 던 동생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툭 던지듯 나온 말이었다.
우연히도 당시 우리 넷의 공통의 관심사가 영어공부와 독서였다.
일상의 분주함으로 자꾸 영어공부와 독서가 후순으로 밀리니 시간을 따로 확보하여 영어원서 읽기 모임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다들 만면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긍정의 화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임은 특별할 것 없었던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내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멤버 중 가장 어린 동생이 영어 전공자였고, 당시 영어강사로 일을 하고 있어서 고맙게도 우리를 잘 이끌어 주었다.
우리의 영어원서 읽기의 첫 번째 책은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이었다.
샬롯의 거미줄은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동화 작가인 로알드 달이 지은 동화이다.
감성이 풍부한 돼지 윌버와 영리한 회색 거미 샬롯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지혜로운 샬롯은 기지를 발휘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 윌버를 구한다.
또한 포용력이 좋고, 모성애도 강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아이들을 구해낸다.
친구인 윌버에게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여야 함을 이해시키고 죽어가며 탄생시킨 자신의 아이들을 부탁한다. 순수한 윌버는 선입견 없이 샬롯을 받아들이고 의지하며 진정한 우정을 나눈다.
이 책을 읽는동안 육아에 지쳐있던 우리는 따뜻한 샬롯의 마음과 모든 걸 내어주어 생명을 탄생시키는 엄마의 희생의 가치에 우리 상황을 대입하며 충분히 공감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이해하고, 격려하였다.
엄마로서의 역할로만 충실히 살아내며 자신의 존재감은 없어져만 가는 헛헛한 마음을 보듬으며 치유와 성장을 경험했다.
독서를 하며 햇살 좋은 봄날 멤버들과 도시락을 싸서 함께 한 봄소풍을 기억한다.
아이들 저녁밥까지 챙겨주고 늦은 저녁 수원역에서 SRT를 타고 떠난 1박 2일 꿈같은 부산여행
산꼭대기에서 와이어에 의존해 내려오는 짚라인 도전
아이들 노는 키즈카페에서 멤버들이 축하해준 나의 깜짝 생일파티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날 나의 일기장엔 ‘나이 마흔 넘어 키즈카페에서 생일파티한 나란 여자... 행운아‘라고 적은 기억이 난다.
서로의 힘듦을 공감해 주고 인정해 주며 책이 전해주는 진정한 우정의 향기를 맛볼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했다. 책이 좋아서였을까 사람이 좋아서였을까?
책의 내용이 입체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이다.
결국 우리는 책의 끝으로 다다를수록 목이 막혀왔고 마지막장을 읽고 덮는 순간 넷 다 엉엉 울어버렸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우리 아이들과 같이 보았는데 샬롯이 죽어가며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윌버에게 부탁하는 장면에서 우리 아이들과 대성통곡을 하면 본 기억이다.
나의 첫 독서모임은 우리 집의 이사로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였고, 내 마음에 강한 임팩트를 남기고 해체되었다.
그 이후에도 아이들 다니는 초등학교 학부모 독서 동아리에 활동하거나,
동네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에 합류하여 나에게 맞는 성격의 모임을 꾸준히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딘가 모를 허전함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항상 나를 모임에 몰입하지 못하게 이방인처럼 헛돌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모임에 대한 좋은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끊임없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참여하려 노력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모임이 해체되고 그나마 활동하던 독서모임도 강제적으로 5년여의 공백기를 갖게 되었다.
최근에 합류하였지만 여러 이유로 지속하기 힘들어진 독서모임이 있다.
나는 성격상 무언가 그만두기 전엔 많은 고민과 주저함이 있다.
일단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 명분이 나와 모임을 함께 한 다른 멤버들에게 적어도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거라고 생각했다.
딱히 특별한 사건이 있거나 관계가 틀어진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멤버들에게서 다년간의 깊이 있는 독서와 다양한 장소에서의 경험치들로 배울 점이 많았고 뒤늦게 합류한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잘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가지 않아 나가기 힘든 독서모임을 지속하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모임장소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머릿속으로 백만 가지 생각하고 있다.
지인에게 나의 이런 속내를 살짝 나누고 조언을 구했다.
그곳에서 함께하기 힘든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하는 내 모습을 가만히 보던 지인이 나에게 말한다.
나는 용기를 내어 모임에 더 이상 참석할 수 없음을 전하고 모임을 탈퇴하였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을 탐색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
하여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에 나가서 적응을 하고 나와 맞는지 탐색하는 시간과 힘을 쓰는 걸 꺼리게 된다. 그만큼 잉여 에너지도 없거니와 소위 말하는 기가 빨리고 싶지 않다.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내가 사람들과 함께 독서를 하고 생각을 이야기하는 모임을 지속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첫 독서모임에서의 순작용과 따뜻한 추억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얻는 다양한 경험과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즐거움일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생각이나 속마음을 알 수 있다는 건 오만이다.
그런데 ‘독서는 누군가의 머릿속을 들어가는 가장 고귀한 방법’이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가끔 최첨단 기계와 발전된 기술로 사람의 뇌를 들여다보고 조정하는 소재를 다룬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본 적은 있지만 나와는 너무 나도 먼 이야기라 실제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와 대화만을 통해서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니…….
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지식, 지혜, 경험뿐 아니라 나 혼자만의 편협한 경험 치로 느끼고 이해하는 것보단 독서모임을 통해 타인의 경험과 감동도 득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활동인 것이다.
온라인 줌으로 활동하는 독서모임에 참여를 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나도 읽어본 시집 ‘안녕 나의 상처에게’를 집필하신 ‘우주‘작가님이 호스트로 진행된 모임이었다.
시를 읽고 감상하기 어려워하는 나이지만 많은 부분 공감을 하며 읽은 시집이라 우주작가님과 온라인상으로나마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가 되었다.
독서모임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좋은 책은 새로운 친구를, 독서는 새로운 대화를 열어준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나는 기회가 된다면 독서모임의 리더가 되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책도 좋고 사람도 좋고 추억도 좋은 오래 하고 싶은 독서모임을 이끌어 가는 리더.
독서모임이 단순히 책만 읽는 모임의 의미를 넘어서 삶의 활력도 되고 응원도 위로도 치유도 되는 나의 첫 모임과 같은 경험을 누군가에게 또 나에게도 선사할 수 있는 독서모임을 이끄는 리더가 되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