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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밤 Jan 19. 2024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육아 정보 속에서 나의 기준은?

나에겐 그것이 어쩌면 정보라기보다 혼란이었다.

정보의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보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아이를 낳고 나니 어느새 알고리즘으로 인해 육아에 관한 영상, 쇼츠, 릴스들이 내 눈앞에 나타난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를 때는 나도 이 영상 저 영상 모두 찾아보곤 했다. 찾아보기보다 쏟아져 나오는 정보 속에서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늘 그런 정보 속에서 말하는 것들을 보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모르게 나를 엄마로서 나를 판단하고 있었다. 정해진 엄마의 기준을 두고 심판대 위에 나라는 사람을 올려놓고 <잘하는지 못 하는지> 내 자신을 판단하게 만들었다.


마치 내가 하는 육아 방식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수면교육을 하든 하지 않든 엄마의 선택이고 엄마의 마음인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마치 잘못 키우고 있는 엄마처럼 비추고 있었다.


수면교육뿐만이 아니라 훈육하는 방식, 아이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면 육아를 잘못하고 있고 아이에게 상처가 된다는 듯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것들이 괜스레 나에게는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육아를 잘못하고 있는 것 마냥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는 전문가일 테고 누군가는 여러 아이를 키운 엄마의 경험담일 것이다.


전문가라고 하면 그것이 다 맞는 말 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사람들이 공부해 온 교육 지식 정보가 당연히 두 돌 아기를 키우는 나보다는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두 돌 된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제서야 느끼는 것은, 전문가라고 해도 다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은 개월수에 따라 분유량부터 이유식 양까지 모두 일반화가 되어있다. 사실 아이마다 다 다른 것인데 정해진 양, 기준, 정해진 틀에 맞춰 육아를 하려고 하면 내 육아를 계속 누군가와 비교하며 확인받으려고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마치 그 사람들의 말이 정답인 것처럼 이렇게 하면 맞고 저렇게 하면 틀리다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판단하게 된다.


고작해야 2년이라는 나의 육아의 시간이지만, 예민한 기질의 아기를 키우면서 늘 느끼고 배우는 것이 있다.

육아는 정답이 없다는 것. 전문가의 말은 그저 내 육아에 있어서 참고용으로만 생각하며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 몇 년 몇십 년 동안 아이를 봐왔거나 공부했던 전문가 일지라도, 내 아이를 공부하고 봐온 건 아니다. 그러니 내가 가장 잘 안다.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에 의해 내 아이를 틀에 짜 맞추어 비교를 하고 또 나라는 엄마를 정해진 육아방식이라는 틀에 넣어 나를 칭찬했다가도 비난하고 채찍질하는 그런 것은 불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느낀 육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엄마가 일관된 태도로 내 아이를 대하는가, 내 아이에게 맞게 육아를 하고 있는가다.


요즘 sns를 보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육아에 대해 전문가라고 말한다. 잠깐의 이력도 껴넣어 육아 전문가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는 요즘 이런 것들을 보면 불편하다.


아이마다 기질도 성향도 모두 다르다. 그에 따른 육아방식도 다 다를 수 있고 육아환경도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의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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