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침에 유난히 일찍 출근하게 되거나, 저녁에 아이들이 각자 숙제를 하는 시간에 마음이 내키면 필사를 한다.
펜을 잡고 문장을 따라 쓰는 동안에는 특별히 큰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생각의 소음이 자연스럽게 잦아든다.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도, 의미를 뽑아내야 한다는 의무도 없이, 그저 손이 문장을 따라 움직이는 시간. 필사는 내게 가장 느린 방식의 사유다.
얼마 전에는 『초역 부처의 말』을 필사하다가 경쟁자나 적을 대하는 방법에 관한 구절에서 문득 손이 멈췄다. 문장이 의도하는 바는 분명 이해가 되는데, 마음에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적을 미워하지 말라거나, 경쟁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는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 자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의 경쟁자나 적은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경쟁자라 부를 만한 사람도, 적이라 부를 수 있는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십 년 전쯤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분명히 누군가를 미워했고 그 미움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자 동시에 나를 갉아먹는 감정이었다. 나는 결국 그 사람을 견뎌내고 스스로를 증명해 내기 위해 내 정신을 갉아먹는 걸 그만두고 이직을 선택했다.
10년쯤 지나면 미움이라는 감정도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지금의 그는 내 인생과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를 떠올리던 감정은 분노에서 혐오로, 혐오에서 피로로,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사람도 불쌍한 인생’이라는, 어쩌면 지극히 내 멋대로인 결론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다행히 그 이름을 떠올려도 아무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문득 이런 상태야말로 진짜 용서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미워하다가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다가 감정을 눌러두는 것도 아닌, 애초에 ‘적’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 상태. 어쩌면 적이 없는 삶은 강해졌다는 의미라기보다, 마음을 많이 비워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나는 무언가를 치열하게 열망하지 않는다.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거의 없고, 갖지 못해 괴로운 것도 없다. 전반적으로 불만이 없는 상태에 가깝다. 나이가 들면서 꼭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더 많이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조금씩 단단해졌다. 이것이 바로 불혹(不惑)의 나이인가, 가끔 생각한다.
세상은 내가 젊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에게 무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나는 남의 시선을 기준 삼아 움직이는 일을 서서히 멈추었다. 남들이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가 조금 더 중요해졌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모든 욕망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욕망이 사라졌다고 해서 삶의 동력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 올리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스스로 선택한 속도로 걸어가는 쪽에 가깝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오래 바라던 평화로운 마음에 도달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질문이 고개를 든다. 이대로 평온에 머무르다 점점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도태되는 건 아닐까. 이것이 무기력인지, 아니면 의식적인 내려놓음인지. 애쓰지 않음과 포기 사이의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삶을 대충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내 몫을 다하려 애쓰고 있고, 직장인으로서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매일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틈틈이 언어 공부도 한다. 오히려 소위 말하는 ‘갓생’에 가까운 삶이다. 해야 할 일들을 놓치지 않고, 나름의 자기 관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어딘가에는 늘 같은 질문이 남는다. 나는 정말 내가 가진 능력을 충분히 사용하며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나를 다그치기보다는, 조용히 따라다니며 나를 살핀다.
그리고 가끔은 그 질문 자체를 의심하곤 한다. ‘매 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말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조언일까, 아니면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관념적 강요일까.
마음이 어지러울 땐 또다시 필사를 한다.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성과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문장을 옮겨 적는다. 필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연한 다짐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그대로 두는 연습에 가깝다. 빠르게 판단하지 않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으며, 그저 머무는 시간.
경쟁자도, 적도 없이 살아가는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이 순간의 고요함을 즐기고 있고 이 평온 속에도 여전히 질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하려고 노력한다(多商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