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서 메일함을 열어보니 곧 예정된 회사 송년회에 직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인사팀의 메일이 도착해 있다.
우리 회사 연말 송년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럭키드로우다. 모든 직원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상자에 넣고, 추첨을 통해 10만 원부터 100만 원까지의 상품권을 나눠준다. 상금의 규모도 규모지만, 워낙 당첨 인원이 많아 체감상 전 직원의 절반쯤은 상품권을 받아 가는 느낌이다. ‘추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거의 상품권을 뿌리는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송년회에서 몇 년째 한 번도 이름이 불린 적이 없다. 코로나 이후 송년회가 재개된 첫해에는 나 역시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워낙 당첨자가 많으니, 이번엔 혹시 나도 한 번쯤은 불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끝내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고, 나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하고 말았다. 원래 나는 이런 종류의 추첨이나 뽑기에서 운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이듬해 송년회에서는 아예 기대를 내려놓았다. ‘나도 한 번쯤 뽑히고 싶다’는 마음이 크면, 송년회가 끝날 때까지 괜히 기대하다가 결국 실망만 남을 것 같았다. 기대를 내려놓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누가 뽑힐지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기보다, 그 자리에 있는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만약 그때 적은 금액이라도 뽑혔다면, 아무런 기대가 없던 만큼 오히려 더 기뻐할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뽑히진 않았다.)
그러다 세 번째 해에는, 기대를 내려놓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이런 추첨에서 늘 운이 없는 건, 평소에 이미 충분히 좋은 운을 누리고 있기 때문인 건 아닐까?’
로또에 당첨되거나 100만 원짜리 공짜 상품권을 얻는 행운은 내게 없지만, 나는 분명 감사할만한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나와 내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서로 사이도 좋으며, 안정적인 직장에서 큰 스트레스 없이 일하고 있다. 좋아하는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있다. 이런 평온한 일상은 나의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추첨에서는 늘 ‘똥손’이지만, 인생 전반으로 보면 꽤 괜찮은 삶을 고른 ‘금손’인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해의 럭키드로우는 좀 더 편안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뽑힌 직원들을 축하해 줄 수 있었다. 심지어 나의 좋은 운을 조금씩 나눠준다는 상상까지 혼자서 제 멋대로 한 걸 알면 상품권에 당첨된 이들은 웃을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을 바꾼 책을 단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제니스 캐플런 작)'을 꼽는다. 한국어 번역본을 먼저 읽고 나서 영어 공부 겸 원서로도 다시 한번 읽었고, 여태까지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도 10권은 넘게 한 듯하다.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시절은 커리어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암흑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인생이 우울하고 힘들던 시절이었다. 왜 내 삶이 이렇게 힘든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든지, 이런 생각들에 매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사실 그 시기는 나의 암흑기가 아니라 감사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만 가득했던 시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감사할만한 상황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감사하는 마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감사하는 마음을 생활화 한 이후로 내 마음에 평화와 여유가 찾아왔기 때문에, 주변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꼭 이 책을 권하거나 선물하고 있다.
행운은 찾아오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고,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행운은 날씨와 같다. 맑을지 비가 올지, 천둥번개가 칠지는 내가 정할 수 없다. 예보를 확인할 수는 있어도, 하늘 자체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하지만 행복은 다르다. 행복은 내가 선택해 펼칠 수 있는 우산에 가깝다.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어도, 젖을지 말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
행복은 어디선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불평할 수 있는 순간에도 나만의 감사할 거리를 찾아낼 수 있는 마음, 그 의지가 행복을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행운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며, 행복의 힘은 행운보다 더 강하다고 믿는다. 우연히 다가오는 행운에만 기대기보다, 내가 적극적으로 작은 행복들을 하나씩 쌓아간다면 긴 인생의 ‘운’도 덩달아 좋아지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어떤 날씨 속에서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