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클래스에서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는 건 발란스다. 나보다 발레를 더 오래 하고, 잘하는 수강생들이 모인 클래스에서도 발란스만큼은 제일 자신있는 편이다.
오른쪽 다리 근력이 더 좋아서인지 오른다리 발란스가 훨씬 안정적이고, 왼쪽은 그보다는 못하지만 가끔 컨디션이 유난히 좋은 날엔 ‘이렇게 한참 더 서 있을 수도 있겠는데?’ 싶은 날도 있다. 음악이 끝날 때까지 균형을 잡고 서 있다가 마지막 박자에 맞춰 깔끔하고 가볍게 내려올 때의 뿌듯함이란!
내가 처음부터 발란스를 잘 잡았던 건 아니다. 발레 1년차엔 누구나 그렇듯 를르베가 아닌 상태에서도 휘청거렸고, 를르베 발란스는 대체 어떻게 잡는 건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제발 3초만 버텨보라”고 말하신 적도 있었다. 과연 를르베로 파세 발란스를 안정적으로 서는 날이 오긴 할까 싶었다. 2년차가 되자 를르베가 아닌 파세 발란스에서는 그럭저럭 안정감을 찾았지만, 를르베 발란스는 여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다 취미발레 카페에서 ‘천국의 계단’을 열심히 탔더니 축이 확 좋아졌다는 글을 우연히 읽었고 그 길로 헬스장에 등록해 천국의 계단을 타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실행하고, 꾸준히 실천하는 게 나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이다.
그렇게 거의 매일 최소 40분, 보통은 1시간 가까이 끝없는 계단을 탄 지 몇 달쯤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발란스가 달라졌다. 엉덩이와 엉덩이 아래 뒷벅지가 단단한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고, 몸이 더 이상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어떻게 그렇게 발란스를 잘 잡느냐고 묻는 발메들에게 “천국의 계단을 매일 한 시간씩, 석 달 정도 타면 된다”고 말해주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사실 방법을 알아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방법이긴 하다.
나 역시 그 시간을 돌아보면 참 지겹고 힘들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계단 위에서 ‘이게 정말 도움이 되긴 할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다시 돌아가면 과연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은 시간이긴 했다.
내 발란스에 가끔은 선생님들마저 감탄할 때도 있다. “이 정도면 턴을 다섯 바퀴는 돌아야 하는 거 아니냐”거나 “웬만한 전공생보다 발란스는 더 나은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잘하는 건 아직 ‘바 옆에서의 발란스’일 뿐이라는 것을.
바에서의 발란스는 정적인 자세로 버티는 것에 가깝다. 반면 센터는 다르다. 바에서는 ‘버티는 발란스’가 가능하지만, 센터에서는 ‘움직이며 유지하는 발란스’가 필요하다. 바에서 오래 서는 정적인 발란스가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이동하고 회전하고 내려오는 모든 순간마다 중심을 다시 세워야 하는 동적인 발란스는 여전히 어렵다. 무대에서 필요한 건 결국, 센터에서 혼자 잡아야 하는 발란스다.
움직임 속에서 균형을 잡는 데에는 더 높은 단계의 훈련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일상이 고요하고 루틴 속에 있을 때는 비교적 쉽게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이 예상치 못하게 바뀌는 순간에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진짜 균형은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린 뒤에도 다시 나만의 축을 찾아 돌아오는 거라는 걸 발레를 통해 깨닫고 있다.
그렇게 잠깐 흔들렸다가도 다시 중심을 찾는 법을, 나는 조금씩 배우고 있다. 바에서의 발란스이긴 해도 발란스가 좋다는 건 어찌 되었든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요인이라고 하니,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움직임 속에서도 스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