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부리지 않고 가늘고 길게 발레 하기

by 서린

지난주 목요일, 발을 귀 옆으로 붙여 올리는 스트레칭을 하다 오른쪽 햄스트링에서 ‘툭’ 하고 느낌이 왔다.


아,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미 몇 번 겪어본 불길한 신호였다. 역시나 다음날부터 햄스트링 안쪽 깊은 곳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이 불편하거나 병원에 가야 할 만큼의 통증은 아니었지만, 스트레칭을 하거나 바뜨망을 찰 때마다 햄스트링이 아파서 몸을 움츠릴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큰 부상까지는 아니어서, 과거의 경험을 돌아볼 때 이 정도는 폼롤러와 찜질을 부지런히 해주면 보통 일주일쯤 지나 괜찮아지곤 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고 폼롤러로 근육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그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르고 통증이 가장 심한 지점에 천천히 몸무게를 싣는 과정은 거의 셀프 고문이나 다름없지만, 그 시간을 견뎌야 얼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에 오롯이 참아 내야 하는 시간이다.




발레를 하며 겪었던 크고 작은 부상들을 떠올려보면, 언제나 마음이 몸보다 앞서 있는 욕심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발레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으로 만들어야 할 턴아웃을, 그저 무릎과 발만 억지로 돌려 만들려다 무릎 통증으로 한동안 고생을 하기도 했다. 무릎이 조금만 불편해져도 일상생활의 질을 상당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몇 년 전부터 예방 차원에서 관절 영양제를 챙겨 먹게 되었다.


과거 몇 번의 햄스트링 통증 역시 뻣뻣한 몸 상태는 생각지도 않고 얼른 다리 찢기를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만 앞서 괜히 스트레칭에 무리하다 생긴 일이었다.


사실 돌아보면 이번 주의 부상도 단순히 한 번의 무리한 스트레칭 때문에 생긴 게 아니었다. 최근 몇 달 동안 하체 근력을 키우겠다고 바레(barre) 수업을 추가로 듣고, 헬스장에서 웨이트까지 병행했다. 실제로 인바디 상 골격근량이 조금씩 차근차근 늘어나는 걸 눈으로 확인하면서 근력 운동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스트레칭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근력 운동량이 늘어날수록 근육이 타이트해지는 느낌을 분명히 느꼈고 ‘이럴수록 스트레칭을 더 해줘야 하는데’라는 생각도 하긴 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내 몸은 하나뿐이고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다. 일과 육아, 집안일과 운동까지 하고 나면 스트레칭까지 할 기력은 남아 있지 않아 그대로 쓰러지듯 잠들기 일쑤였다. 미뤄두었던 일이 폭탄처럼 기어코 내 품에 안기고나서야 후회는 늘 그렇게 뒤늦게 찾아온다. 미리 알아차릴만한 신호가 분명 있었는데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 하고 넘기다, 그 ‘툭’ 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든다. 비단 부상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많은 문제들이 그렇게 찾아온다.




발레는 생각보다 부상이 잦은 취미다. 프로 무용수들이 부상을 달고 사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기본기가 약하고 몸이 뻣뻣한 상태에서 늦게 발레를 시작한 취발러들에게도 늘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발목, 무릎, 햄스트링처럼 발레에서 주로 사용하는 하체에 부상이 많은 편이다.


주변을 봐도 발레를 하다 다치거나, 다리 어딘가가 좋지 않아 잠시 쉬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도 조금만 나아지면 금세 다시 돌아오거나, 아픈 몸을 이끌고 고통을 참고서라도 클래스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발레에는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다들 취미에 이렇게까지 진심인 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힘들고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고 싶은 그 무언가.


생각해 보면 발레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Runner’s knee나 Tennis elbow처럼 종목마다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부상이 있는 걸 보면 어떤 종목이든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건 피할 수 없나 보다. 그게 무엇이든 진심으로 빠지고 나면 그 균형을 지키기가 어려운 법이다.




다행히 나는 3년이 넘는 발레 라이프 중에 발레를 쉬어야 할 만큼의 큰 부상은 없었다. 원래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워킹맘에게 부상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몸을 사리며 발레를 하는 덕분이다. 내가 멈추면 나 혼자만 멈추는 게 아니라 가족도 다 같이 흔들릴 수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나의 발레 모토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실력이 조금 더디게 늘더라도 절대 무리하지 말기, 남들과 비교하지 말기, 최대한 다치지 않고 가늘고 길게 오래 하기.


이번 햄스트링 통증은 부상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아주 작은 이벤트에 불과했지만, 스트레칭과 폼롤러로 몸을 꼼꼼히 풀어주지 않으면 언제든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는 충분했다. 일주일 동안 매일 바닥에 누워 폼롤러를 굴리고 찜질을 해준 덕분에 지금은 80% 이상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지만, 이번 경험을 교훈 삼아 다시 한번 '욕심부리지 않기'를 다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 속담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는 발레에도 적용된다. 발레를 더 오래 즐기고 싶다면, 빨리 가는 것보다 멈추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금요일 연재
이전 06화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발란스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