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에서 뛰지를 않는데 전략, 전술이 무슨 의미가 있어?” 예선 2번 째 경기에서 2:1로 패한 후, 코치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침묵이 흐른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곁눈질로 코치님의 굳은 표정을 보니 집에 도망가고 싶었다. 첫 경기도 2:0으로 패한 뒤였다. 첫 상대가 강 팀이라는 소문에 괜스레 기가 죽었는지 다들 제 몫을 하지 못했다. 첫 경기 후, 코치님의 피 튀기는 피드백이 이어졌다.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응원과 함께 두번째 경기는 무조건 이기자고 호기롭게 들어갔건만, 결국 졌다.
두 번째 경기 스코어 2:1. 결과만 보면 박빙의 승부를 했나 싶겠지만 경기를 하다 말고 끝난 느낌이 들 만큼 찝찝함이 가득했다. 모두가 그랬다. 특별히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고 체력도 남아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알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제대로 뛰질 않아. 이번 경기는 정말 못했어. 첫 경기보다 더” 2번째 팀은 우리와 비슷한 실력이라고 여기고 대충 했다는 뜻이다. 간절함은 찾아볼 수 없고 하지 말아야 할 실점을 2개나 했다. 최후방에서 수비와 볼 배급을 맡는 포지션 ‘픽소(Fixo)’를 맡은 팀원도 불만을 토로했다. ‘픽소(Fixo)’는 축구로 따지면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다. “왜 아무도 내려 오질 않아? 나 혼자 다 막을 수가 없잖아” 역습을 당했을 때 수비를 위해 팀원들이 빠르게 백코트를 하지 않은 탓이다. 혼자 공격수 여럿을 상대하다 실점을 했으니 화가 날 법도 하다.
<*풋살 용어 대부분은 스페인어로 되어 있다. 풋살이 1930년대 우루과이에서 창안됐고 남미와 스페인에서 흥행했기 때문이다. 반면 축구는 영국에서 태동했기에 대부분의 용어가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대단한 걸 바라는 거 아니잖아? 최소한 직선으로라도 왔다 갔다 뛰기라도 해야지” 코치님이 다시 한 번 뼈를 때린다. 윙어인 ‘아라(ALA)’ 내게 해당하는 말이다. ‘아라(ALA)’는 양 사이드 측면에 위치하는 포지션으로 미드필더의 역할을 한다. 중앙으로 이동해 상대의 수비에서 빠져나와 전방 공격수에게 볼을 연결해 주거나 직접 득점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능력은 체력이다. 양 측면에서 하프라인을 오가며 공격과 수비 모두에 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공격하러 나갔다가 빠르게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다 다반사다. 왜냐고? 체력이 달려서. 힘이 들어서 말이다.
“힘들어도 해야 돼! 끝까지!” 허리가 접힌 채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나를 향한 코치님 목소리가 들린다. 백 번 천 번 맞다. 힘들다고 멈추거나 드러누울 수는 없는 일이다. 스프린트나 격한 몸싸움을 한 번 하고 나면 허리가 절로 접힌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에도 경기는 계속된다. 통상 10분에서 15분 진행되는데 풀 타임을 소화할 리 만무하다. 지친 기색을 보이고 움직임이 한없이 느려지면 결국 코트 밖으로 불려 나와 교체된다. 경기장 안에서는 죽을 것만 같았는데 금세 숨이 돌아온다. 죽도록 뛰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5,6분 조차 적당히 뛰는 시늉만 했을지도 모른다. 잠을 푹 못 잤다는 이유도 생리 중이라는 핑계도 그저 소용없는 변명일 뿐이다. 제대로 뛰지도 않고 갖은 핑계와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내 모습이 지겨워졌다.
풋살 3년 차. “실력이 좀 되겠네?”라고 생각할 법한 연차다. 누가 풋살을 얼마나 했냐고 물으면 1년 차 혹은 2년 차라고 뻥이라도 치고 싶다. 슬프게도 실력이란 연차가 많다고 그저 같이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 집에서 밥하고 요리를 한다고 셰프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능숙해지기는 하겠지만 전문가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 실력은 늘 부족해도 어떻게든 상대팀을 따라붙고 악으로 깡으로 공을 뺏고 걷어내곤 했다. 초창기 내가 지녔던 그 악바리 근성도 더이상 보이질 않는다. 혹시 나 이제 좀 한다는 근본 없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건가. 하지만 다행히도 한참 부족한 실력인 걸 알기에 “왜 난 못하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묻는다. 어떻게?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스스로도 알고 있다. 가만히 서서는 공을 줄 수도 공을 받을 수도 골을 넣을 수도 없다. 팀 모두가 원하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시간이 걸린다. 팀원으로써 책임감을 탑재하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달리지 않고서는 방도가 없다. 그 시작과 끝은 뛰는 것이다. 제발 군소리 말고 후회 없이 뛰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