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미 Jun 28. 2024

비전공자의 특급호텔 취업 성공기

호텔 경영학과 아님

2009년 상반기. 첫 번째 인턴을 했던 A 그룹과 C 그룹에서 공채 신입사원 모집 공고가 나왔고 나는 두 그룹 모두 지원했다. (두 번째 인턴을 했던 B 그룹은 공고가 없었다) 국내 대기업 소유의 5성급 호텔은 A와 C 그룹 포함 4개가 있는데 나머지는 하반기 공채만 진행했다. 사실 서류 합격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보아도 호텔 지원 동기가 명확 했고 호텔에 대한 관심과 열정 또한 인턴의 경험이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나의 서류에는 티도 없을 거라고 자부했고 예상대로 서류는 합격했다. (최근에는 삼성 그룹을 제외하고는 공채 전형이 거의 사라졌다)   


면접도 자신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하며 호텔뿐만 아니라 여러 회사에 지원을 했기 때문에 취업 스터디도 병행했다. 나는 면접에 중점을 두고 서로 피드백을 주는 스터디에 참여했다. 모의 면접으로 연습하며 어색한 표정이나 제스처를 고쳐나갔고 특히, 호텔과 관계된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충실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름의 근거가 있는 자신감 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호텔리어 다운 그루밍을 보여주기 위해 커트 머리도 부지런히 길렀다. 어중간한 거지 존을 참아내고 머리를 뒤로 묶음과 동시에 올백으로 이마를 드러낼 수 있도록 앞머리도 길렀다. 면접 의상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블랙 투피스 정장 안에 화이트 블라우스를 입었다. 잔머리 없이 정갈하게 빗어 넘겨 묶은 헤어스타일로 마무리. 사실 어느 면접에서나 볼 수 있는, 지원 서류에 붙어 있는 증명 사진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수려한 외모나 특이사항을 보유하고 있지 않는 한 면접 관들의 주목을 받기 힘들었다. 이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전략적으로 톤 다운된 베이지 정장을 입거나 다른 컬러의 블라우스로 포인트를 줬을 것 같다. (오히려 그것만으로도 쉽게 기억될지도 모른다)

by chatGPT

“아니, 왜 호텔에서 일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면접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지원 동기를 확인하는 질문이다. 우연히 방문한 호텔에서 대우받는 기분이 좋아 호텔이라는 공간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리어들을 보며 의사, 변호사보다 높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두 번의 인턴 경험을 통해 이 호기심과 관심에서 호텔에서 일하고 싶다는 동기로 확장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 호텔 잘 알아’ 하는 태도가 재수 없어 보이거나 역효과를 내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별 수 있나. 신입사원에게 필요한 건 뭐다? 열정! 태도! 그것을 오롯이 보여줄 수 있는 그간의 히스토리와 실제 인턴 경험을 바탕으로 어필했다. ‘취업’을 위한 단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갔다. 입사 후에는 ‘객실 세일즈’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호텔을 전방위적으로 알리고 많은 고객을 유입시켜 실제 매출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와 함께 말이다. 이후에는 지원 직무인 영업, 마케팅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 영업이라면 빠지지 않는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차마 알 쓰(알코올 쓰레기)라고 말할 수 없어 “본 안주 나오기 전에 한 병 먹고 시작합니다” 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그 외에 스트레스 해소 방법, 대인관계 등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이 오갔다. 


그렇게 면접까지 모두 마치고 C 그룹에 최종합격 했다. 첫 번째 인턴을 했던 A 그룹은 불합격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추정컨대 컬처 핏(Culture Fit)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컬처 핏’이란 한 사람이 특정 회사나 조직의 문화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의미한다. 한국어로 흔히 사용되는 표현은 ‘문화 적합성’이다. 쉽게 말해, 그 사람의 가치관, 행동 방식, 업무 스타일이 회사의 분위기와 잘 맞는지를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이라면, 유연하고 적응력 있는 사람이 컬처 핏이 높을 것이다. 컬처 핏은 채용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이는 업무 능력뿐만 아니라 조직과의 조화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A그룹의 문화와 당시 개방적이었던 나의 컬처 핏의 차이가 있었다. (어느새 나도 보수적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그토록 원하던 호텔에 합격은 했으니 취업 미션은 완수한 걸로.


2009년 상반기, C 그룹에 입사한 140여 명의 신입사원은 연수원에서 3주간 교육을 받았다. 140명 중 여자는 40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였다. 나와 함께 호텔에 최종 합격한 동기는 남자였고 그는 C 그룹 호텔에서 인턴을 하고 바로 공채로 입사했다. 준수한 외모와 아나운서 버금가는 보이스를 보유한 훈남이었다. 그룹 사 중에 백화점으로 입사한 신입들의 외모가 단연 TOP이었는데 그에 밀리지 않는 훈남 동기와 함께 있으니 “호텔도 외모 보고 뽑나 봐”라고 다른 동기들이 수군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10명 이상인 타 계열사에 비해 2명의 소수 인원이라 관심을 받았는데 훈남 동기와 함께 나도 주목받았다. 3주간의 연수는 그룹 역사 탐구, 체육대회, 행군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매우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마음은 나날이 더해져, 애꿎은 탁상 달력을 수없이 넘기며 3주가 빨리 지나길 바랐다. 마치 기다림의 끝을 앞당기려는 사람 마냥 그랬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15년전 사진이라 화질이 매우 떨어진다;;


작가의 이전글 인사팀에서 일해볼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