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회고: 9.9 - 9.16
추석 연휴를 맞아 삼척에 캠핑을 왔다. 시댁인 강릉과 한 시간 거리에 있고 아이가 좋아하는 바다가 앞에 있는 데다가 우리 집 큰 개도 동반할 수 있는 원평 해수욕장이라는 곳이다. 결혼하고 아이와 함께한 캠핑은 이번이 두 번째지만 오토캠핑은 처음이다. (첫 캠핑은 캠핑카 렌털이었는데 비가 많이 와 기억이 흐릿하다.) 싱글 때 몸 하나 배낭 하나 들고 하던 백패킹은 참 편했는데, 아이에 개까지 동반한 오토캠핑은 궂은 날씨까지 겹쳐 생각 이상으로 고되었다. 그래도 역시나 캠핑의 매력인 '낭만'은 여전했다.
1.
캠핑에서 오는 수많은 선택은 늘 편리함과 불편함의 경계에 있다. 짐을 최소화해서 오면 현장에서 막상 필요한 것이 생각나고, 필요하다고 챙겨 온 것들은 막상 쓰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도 '편리함'을 일부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내면 낭만이 생기기도 한다. 드라이기 대신 수건과 손으로 직접 아이의 머리를 말려주거나, 스피커 대신 허밍과 콧노래로 배경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와 타프를 설치하고 나면 만사 귀찮아져도, 잠시 적당한 바람, 온도, 습도가 한꺼번에 찾아오는 찰나의 행복한 순간들이 켜켜이 쌓인다.
2.
첫날밤의 비바람은 텐트가 뽑혀 날아갈까 걱정될 정도로 거셌다. 집에 돌아간다 해도 폭우 속에서 사이트를 철수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포기하고 텐트 안에 누워 아이랑 놀다가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고등학생 때 쓰던 엠씨스퀘어가 생각날 정도로 몰입했다. 그래, 나는 텐트 안에서 듣던 빗소리를 정말 좋아했었지. 원 없이 듣고 가자. 게다가 부서질 듯한 파도 소리까지 덤이다. 비가 그치고 마지막 밤, 잠자리에 누운 아이가 "오늘은 파도 소리가 왜 이렇게 안 들리지?"라고 궁금해했다. 아이에게 "아쉬워?"라고 물어볼 걸 그랬다.
3.
"남편이 내려주는 커피 그립지 않았어?" 집에서 커피를 마실 일이 없다 보니 실로 오랜만이었다. 바다를 앞에 두고 파도 소리를 벗 삼아 마시는 커피. 남편은 내가 커피를 찾을 줄 알고 캠핑 감성의 주전자도 챙겨 왔다.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닭꼬치와 비빔면을 준비했다. 닭꼬치는 파닭으로 사고 그가 애정하는 페리카나 양념 치킨 소스를 별도 구매했다. 비빔면도 골뱅이 무침소스를 따로 챙겨 레시피를 적어왔다. 비록 아이스박스에 얼음 없이 식자재를 보관하는 바람에 닭꼬치도 상하고 비빔면용 소면도 깜빡했지만,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준비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캠핑의 맛이다.
4.
저녁 먹기 전, 남편이 아이와 낚시를 했다. 미끼 지렁이를 아이 손에 쥐어 주었는데 조물조물 잘도 만진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내 얼굴에 가져다 대면서 마냥 낄낄거린다. 잡은 물고기를 방생하는 것까지 알려준 남편 덕분에 나는 텐트에서 개랑 낮잠도 잤다. 예쁜 색을 지닌 보리멸 한 마리를 잡고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소리에 깼지만. 텐트 밖으로 보이는 남편과 아이, 그리고 개의 뒷모습이 이번 캠핑의 '낭만 중의 낭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