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회고: 9.1 - 9.8
9월 1일부터 일상의 한 줄 기록을 시작해 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일들과 감정이 오갔다.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는 한 시간 반에 한 번씩,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을 키워드로 적는 걸 추천했고 나는 오전, 점심, 오후, 늦은 오후, 저녁(6시 이후) 정도로 나눠 3~5번쯤 적었다. 적어둔 메모를 보면 꽤나 정신없이, 분주하게, 부지런히, 치열하게 살아낸 한 주였다.
1. 9월은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이벤트가 많고 가을을 느낄 수 있어서다. 그 시작은 개학, 개강과 나의 생일이었는데 결혼을 한 뒤로는 결혼기념일이 추가되었다. 8월 31일 밤 11시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그래서 9월 1일이 결혼기념일 당일에 달달 함은 없었다. 나의 말투가 한몫했는데 남편에 의하면 회사생활을 오래 하면서 생긴 ‘후천적 타고남’인 것 같다고 했다. 다그치고 질책하는 내 말투를 고쳐줄 수 있는 아카데미는 없는지, 아니면 고치고 나서 내가 차려야 하는지 죽기 전에 고칠 수는 있는지 스스로 제일 궁금하다. 아무튼 짜증 나서 집안일을 하고 낮잠을 퍼질러 자다가 예약해 둔 하얏트 텐카이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기념일이니 음식 소비 지수를 한시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야키토리를 좋아하는 남편을 생각해서 가자고 한 곳인데 가성비가 많이 떨어져 꼬치만 먹기 위해 재방문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싸우고 나서 둘 다 감정이 긍정적으로 나아지지 않아 둘이 찍은 사진은 없다. 그래도 남편이 써준 카드는 지금까지 받은 것 중에 제일 웃겼다.
2. 공식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성동구에서 창단한 여자 축구팀 ‘FC 투게더’에 조인했다. 9월부터 새로 개장한 살곶이 체육공원의 축구장에서 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누가 봐도 New임이 느껴지는 그린그린 한 잔디가 “어서 와, 축구해야지” 속삭이며 약간의 설렘을 돋우더라. ‘FC 투게더’라는 팀 명을 듣고 처음에는 촌스럽다고만 생각했는데 “투게더!” “함께!”로 이어지는 구호를 계속 듣다 보니 진짜 One Team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로 ‘함께’ 한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 주는 파이팅이 좋았다. 반면, 풋살을 하는 팀은 요즘 들어 뜨뜻미지근한 느낌인데 아무래도 다 같이 파이팅이 넘쳐야만 스스로 더 파이팅 하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함께 해 내겠다는 마음이 모인 상태” 집, 회사, 풋살장 또는 축구장에서도 어디서든 One Team이 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3. 막내 팀원의 퇴사 선언. 내가 부단히 노력한 것은 구성원들의 각자 입장과 생각을 애써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일이었다. 일단 그 친구에게 조직에 대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얼마 전 함께 논의한 업무 환경 개선에 대해서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비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올해 안에 꼭 개선해보고 싶다고. 이를 위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약속하며 같이 더 일해보자고 설득했다. 무엇보다 그 친구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내가 만들어보겠다고 강조했다. 그 이후는? 너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내가 퇴사하고 싶네.
4. 성수동에 점심 미팅을 갔다가 포틀러에 들렸다. 포실한 스모어도 충분히 매력 있지만 성수동 대로 한복판에 숨겨진 보석 같은 무드가 더 끌린다. 담벼락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있는 입구의 야외 테이블과 그날의 적당한 인구밀도가 특히 좋았다. 빌딩들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주변의 적당한 나무, 그날의 온도와 습도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다음엔 스낵 라운지에서 책을 읽어보고 싶다.
5. 8월 초 브랜드 뉴믹스 커피에 협업 제안서를 보냈고 8월 마지막 주, 뉴믹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이 시대의 마케터 김규림 님께 회신을 받아 미팅을 했다. 뉴믹스라는 브랜드와 뭐라도 해보고 싶은 ‘사심’이 일로 이어지니 협업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재미있어지려고 했다. 한편으로 혹시 그분들이 너무 냉철하고 차갑지는 않을까 혼자 걱정도 했는데 오히려 한 마디 한 마디에 담담한 매너와 예의를 갖춰져 있었고 따뜻했다. 만약, 우리가 협업을 한다면 단순 의뢰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면서 브랜드와 고객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미팅 말미에 사심을 듬뿍 담아 김규림 님의 ‘매일의 감탄력’ 책에 친필 사인을 받았다. 다음 미팅에서 또 만날 수 있다면 서원 님의 사진집에 사인을 받아야지.
6. 20년 지기 친구의 말. “너는 Good Listener 야”. 내 부모와 내 남편과 내 딸에게도 이렇게만 해야지. 그리고 말 끊지 말아야지.'
7. 이번 생일은 받은 축하의 횟수는 예년에 비해 적지만 마음은 깊다. 미리 축하해주고 싶다고 군포에서 퇴근하며 선물을 사 들고 찾아온 친구, 손흥민이 신는 풋살화를 고르며 사이즈가 맞을까 수 차례 고민 했다는 팀원들, 피곤함을 참아내고 밤 8시에 미역국을 끓여준 남편, 집으로 초대해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는 베이커리에서 산 케이크와 빙수를 준비한 선배, “엄마, 생일 축하합니다. 써주세요.” 고사리 손으로 축하 카드를 써준 우리 딸까지. 늦었다며 축하메시지를 보내 준 지인들에게는 “매일을 생일처럼”이라고 말하며 고맙다 했다. 몇 년 전부터 카카오톡에 생일이 나타나지 않도록 설정했는데 딱 좋다. 생일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에게 축하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