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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뭐랄까,

주간 회고 (18): 1.28 - 2.3

by 제이미 Feb 11. 2025

1.

핑크색 대야 한가득, 야채와 고기를 듬뿍 넣은 동그랑땡 반죽이 식탁 위에 놓였다. 양이 어마어마했다. “두고두고 많이 먹으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며느리 둘이 이걸다 부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결국 남편을 긴 부침용 팬 앞에 세웠다. 여자들은 반죽을 동글동글 빚어 밀가루와 계란물을 입혔고, 남편은 묵묵히 팬을 지켰다. 결혼 6년 만에 처음으로 부침개를 부치는 남편 덕에 예상보다 빨리 핑크색 대야의 바닥이 드러났다. 그러나 기름 냄새에 질린 남편은 연휴 내내 동그랑땡을 기피했고, 나 역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이상하게 많으니까 더 안 먹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와 하나씩 꺼내 먹어보니, 100% 핸드메이드라 그런지 더 맛있었다. 연휴가 끝나고도 남편과 동그랑땡 이야기를 나누며, 문득 그가 나와 같은 ‘며느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동질감이 들면서 기분이 좋았다. 이제 남편에게 동그랑땡 부치기는 ‘처음이자 마지막’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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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딸의 아랫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에 하루 종일 칭얼댔다. 아직 단단히 붙어 있는 것같아 치과에 가려 했지만, 딸은 기겁을 했다. “실로 빼보자”며 남편을 꼬셨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니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정말 빠질까?” 얇은 실밖에 없어 걱정하던 남편은 차분하게 아랫니에 실을 감았다. 정작 내가 더 떨렸다. 아프면 어쩌지? 안 빠지면??


“하나, 둘, 탁!”

실은 이에서 분리되었고, 첫 시도는 실패. 나는 옆에서아이 손을 꼭 잡아주며 긴장을 덜어주려 했고, 남편은 다시 실을 감았다.


다시 “하나, 둘, 탁!”

이번엔 마침내 성공. 잠시 어리둥절하던 딸도 곧 상황을 파악하고 진정했다. 아랫니는 지붕에 던지지도 못한다는데,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그나저나 벌써 딸의 이가 빠지고, 새 이가 난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아쉬웠다. 이제 아이와의 점점 ‘처음’도 줄어드려나? 두 번째 이가 빠질 때는 아이는 덜 무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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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언제나 설레고, 기대되고, 동시에 두렵다. 요즘은 특히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처음’은 깊이 기억에 남는다. 무섭고 걱정스럽더라도, 그만큼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마주할 수 있는 ‘처음’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 순간들이 설렘으로 가득하거나, 혹여 두렵더라도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다독여 줄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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