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도 Oct 11. 2022

포기김치의 기포

최여사의 진미채 무침


오후 3시쯤, 2교대 근무하는 회사에 다니는 동네 지인을 만났다.

오늘은 일이 있어 몇 시간 일찍 직장에 간다며, 6시에 지하철 타면 사람이  많아 힘들지 않냐고 내게 물었다. 저녁 7시에 시작하는 드로잉 수업을 듣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는 걸 알기에 묻는 것이었다. "힘들지 않은데요?"라고 말하고는 힘들었던가? 잠시 생각했다.

 두 시간 후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려는데, 터질 듯 엉켜있는 사람들을 지하철 문이 눌러 담고 있었다. 아! 그래. 항상 사람이 많았었지... 맞아.

별것 아니라고 당연한 거라고 이 정도는 힘든 거 아니라고  뇌가 기억을 지운 걸까?

김장 김치통 같은 지하철에 꽉 눌린 포기김치가 되어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기포처럼 떠올랐다.


 반찬들.

 메인 요리 주변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가운데 놓인 요리 옆을 지키는 반찬들은 퇴근 시간 사람들이 지하철에 모이 듯 당연하게 상 위에 자리하고 있다.

 물엿에 한 껏 버무려져 반짝이는 반찬도 참기름에  잔뜩 들어간 고소한 반찬도 메인요리에 묻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가운데 떡 놓인 메인요리가  반찬이었다. 결혼 후 시댁에서, 시어머니의 음식을 처음 먹은

우리 엄마 최여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음식이  막히게 맛있었 던 것이다. 그 기막힌 요리를  태어날 때부터 먹은 아빠는 최여사의 요리에 매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부터 음식을 못한다고 인정하기에 이른 최여사는 요리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간소하고 한산한 밥상을 자주  마주했다. 그  한산함 속에 메인인 양  매일 자리한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진미채 무침. 최여사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 반찬이었다. 진미채 무침은 항상 밥상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와 동생의 성장에 한 몫한 주 단백질 요리라 할 수 있겠다.   다행인지 진미채 무침은 맛있었고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어느 날 맛의 비법을 묻는 나에게 무칠 때 넣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하나는 "마요네즈'라고 최여사는 비밀스럽게 얘기했다.


 우리 동네 김가 김밥에서는 진미채로 만든 오징어 김밥을 판매하고 있다. 김가 김밥에서 나의 주문 1순위는 단연 오징어 김밥이다.

 입 안에 매콤 달달한 진미채를 씹고 있자면 비닐장갑을 끼고 조물조물 진미채를 무치던 엄마가 떠오른다. 딸에게 만드는 방법을 유일하게 설명해 준 요리이며 한결같은 맛을 유지했던 든든한 우리 집 메인 진미채 무침. 

 보글보글 꼬르륵. 배가 고프다.

 기포 같은 생각들이 한강의 반짝이는 윤슬에 멈춘다.

 이번 역은 합정. 합정입니다. 

 벌써 내릴 때가 되었다.


 수업 듣기 전에  지하철역에서 파는 진미채 꼬마김밥을

 먹자 생각하며 기포들로 가득 찬 지하철을 내린다.



작가의 이전글 양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