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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바다 Jul 10. 2021

솔354

야동


거실에 걸린 토끼 액자를 보며 솔이가 물었다.


- 아빠 토끼의 비밀을 알려줄까?

- 그래.

- 토끼 눈이 왜 빨간 지 알아?

- 글쎄.

- 그건......토끼가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고......야동을 많이 봐서 그런대...


우리 둘이 킥킥 웃었다.


어젠 솔이가 휴대폰을 갖고 놀다가 

- 아, 이건 야동이 나올 것 같아. 누르지 말고 통과해야지.

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다닐 적, 


우리 동네는 미군들과 잠시 살림차리는 여자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들은 짧으면 하루, 길게는 몇 년씩 함께 살다가 헤어지곤 했다. 소위 양색시(양공주)라 불리우는 아줌마들이었다. 바로 옆집에도 그런 아줌마가 살았는데, 그 아줌마는 거의 매일 저녁 미군부대에 놀러갔다. 새로운 동거자를 구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고 이미 구한 동거자와 저녁을 즐기기 위해 부대를 찾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줌마는 엄마에게 집을 지켜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는데, 그런 날이면 나는 엄마를 졸라 아줌마 집에 놀러가곤 했다. 그 집엔 텔레비전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에는 엄마가 피곤하다며 먼저 집에 갈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나는 탁자 아래에 있는 포르노잡지를 훔쳐보곤 했다. 팬트하우스며 플레이보이, 허슬러 같은 잡지들. 당시 우리 또래들은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잡지들이었다.


나는 내가 매우 이른 나이에, 나이에 걸맞지 않는 성적 자극을 받았다고 생각하곤 했었는데, 솔이 세대의 아이들은 나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성적 자극에 노출되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찮게 포르노 잡지를 접했던 어린 시절이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인생의 모든 일은 그에 걸맞는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휴대폰을 강제로 빼앗을 순 없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는 일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억압은 더 나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그랬듯, 솔이도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 배우고 그것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자신의 판단 같은 것을 서서히 갖추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성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받아들이고 멋대로 왜곡하는 의식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기쁨과 자극을 주기도 하지만 인생의 아픔이나 상처와 깊게 관련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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