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41
지금은 많이 찾아볼 수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이나 사무실에 유선전화가 많았다.
유선전화는 보통 팀당 하나 정도 설치되었다.
물론 사무실에 단 하나의 유선전화가 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쓰다보면 전화선은 꼬이고 꼬여 거의 끊어질 지경이 되었다.
개인적인 소임 이외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유독 이 뒤틀린 전화선을 참지 못했다.
전화선이 뒤틀릴 때마다 정성스럽게 꼬인 선을 반대로 풀었다.
다른 팀의 전화들도 심하게 꼬이면 가서 풀곤 하였다.
그런 나를 보며 한 동료가 말했다.
- 아무렇지도 않은데 뭘 그래?
그 말에는 내가 필요 이상 예민한 것 아닌가, 하는 비난이 담겨 보였다.
스스로 내 행동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긴 했다.
명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들었던 생각은, 전화선이 억압받고 있다는 상상이었다.
언젠가는 끊어져버릴 것만 같아 이쯤에서 한번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누구도 관심이 없으니 내가 해줘야겠다는 작은 사명감도 있었다.
막연한 추측을 해 본다.
인간은 누구나 억압을 싫어한다.
억압이 지속되면 여러 병리학적 이상행동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학교든 직장이든, 사회든 우리는 늘 어느 정도의 억압 속에서 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전화선에 감정이입했던 건 아닐까.
그 억압을 끊어내고 싶다는 간접적인 욕망이 행동의 원인이었던 건 아닐까.
거창하게 말해 일종의 자기치유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냥,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전화선#억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