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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바다 Nov 13. 2024

차이는 모순이 아니다

연지동 일기40

아내가 새 샴프를 사주었다.

지루성 피부에 좋다고 했다.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펌핑기를 눌렀는데 샴프액이 잘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을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누르자 펌핑기는 잘 작동되었다.

그럭저럭 머리를 감았는데, 다음 날도 펌핑기는 잘 작동하지 않았다.

다시 아내를 불렀더니, 잘 되는데 왜 그래, 하며 핀잔을 주었다.


핀잔을 듣기 싫어 몇 번의 수고 끝에 겨우겨우 머리를 감았다.

하지만 이후로도 펌핑기는 시원하게 작동되지 않았다.

답답함이 쌓여갔다.


아내의 핀잔과 샴프용기의 불편함 사이에서 망서리다 결국 샴프 용기의 뚜껑을 열었다.

가만 살펴보니, 펌핑관 끝이 조금 깨져 있었다.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쩔 땐 샴프액이 잘 나오다가 또 어쩔 땐 샴프액이 잘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가 누를 땐 잘 작동되었다.

내가 누를 땐 잘 작동되지 않았다.

같은 원인을 제공했는데 다른 결과가 나온 셈이다.

깨진 펌핑관 탓이다.

아내의 타박은 타당했다.

나의 항변도 타당했다.

서로 다른 결과가 꼭 모순은 아니다.

결과가 의심될 땐, 일방적으로 결론 짓기 전에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고 그 원인과 결과를 촘촘히 살펴야 한다.

결과의 모순을, 섬세하고 차분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배려하면서 살펴야 한다.

샴프가 오락가락 나올 때, 먼저 샴푸 뚜껑을 열어보고 살폈더라면, 그래서 깨진 관을 확인했더라면 아내도 섣불리 나를 타박하지 않았을 것이고, 나도 나의 답답함을 좀 더 확신했을 것이다.


"서로의 관점이나 주장과 좀 다르게 보여도 친절하게 차이를 좁혀가는 세상을 위하여 ..."




#인생에세이#너그러움#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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