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23
여행을 떠나면서 여벌로 준비했던 바지를 입지도 않고 되가져 왔다.
어머니가 말했다.
“입지도 않을 걸 뭐하러 가져갔대?”
동료 교사와 함께 은행에 갔다.
먹구름이 피어올라 일부러 우산을 챙겼다.
하지만 은행에 갔다 돌아올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동료가 말했다.
“거봐, 비 안온댔잖아.”
오래 전,
월드컵 축구에서 경기에 뛴 선수들과 뛰지 않은 선수들에게 격려금을 차등지급한다는 말을 들었다.
열심히 뛴 선수들과 벤치에 앉아있는 선수들에게 똑같이 돈을 지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벌의 바지 때문에,
바지를 갈아입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의 발생을 걱정하지 않고 편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준비한 작은 우산 때문에,
혹 중간에 쏟아질지도 모르는 장맛비의 염려를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월드컵에서 선수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게임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벤치에서 언제든지 그들을 대신할 수 있는 선수들이 준비하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결과주의다.
결과주의를 비난하면서도, 과정의 소중함은 무시하는,
우리는 지금 모순에 빠져있다.
#결과주의#과정#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