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래바다 Nov 11. 2024

편지를 태웠다

연지동 일기38

뜬금없이 딸아이가 물었다.

- 아빠, 편지 태워본 적 있어?

- ...음, 태워본 적 있지...

까마득히, 정말 까마득히 잊고 있던 기억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 무슨 편지?

-...당연히 연애 편지지...

딸아이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보냈던 편지라고? 눈빛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 이건 내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편지를 태우면 하늘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읽는대...

- 음...죽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그걸 태우면, 그 죽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뜻인거 같은데...

- 그런 말인가...나는 잘은 모르겠어...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라...

딸아이는 그 내용의 사실에 대해 확신이 없는 듯 말끝을 흐렸다.


순간, 

삶과 죽음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 아프게 다가왔다.

삶과 죽음의 접점이 없는 곳에서, 편지를 태워 그 사이를 잇는다는 것이 낭만적이고 슬프게 느껴졌다.


손편지라는 형식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편지를 죽은 사람에게 쓴다.

태운다.

죽은 이가 읽는다.

간절하면, 삶과 죽음도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일까.

몸이 연결되지 못하는데 언어만 연결된다면, 그건 더 아픈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딸아이에게 설명했다.

딸아이가 대꾸했다.

- 나는 잘 몰라. 그냥...나도 편지 한 번 태워보고 싶어서...ㅎ


나는 혼자 웃는다.

- 참, 아이들이란...왜 그런 게 해보고 싶을까? 

아파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리워해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냥 단순히 판타지에 대한 흥미일까.




#인생에세이#손편지#삶과죽음

매거진의 이전글 문득 궁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