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38
뜬금없이 딸아이가 물었다.
- 아빠, 편지 태워본 적 있어?
- ...음, 태워본 적 있지...
까마득히, 정말 까마득히 잊고 있던 기억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 무슨 편지?
-...당연히 연애 편지지...
딸아이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보냈던 편지라고? 눈빛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 이건 내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편지를 태우면 하늘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읽는대...
- 음...죽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그걸 태우면, 그 죽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뜻인거 같은데...
- 그런 말인가...나는 잘은 모르겠어...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라...
딸아이는 그 내용의 사실에 대해 확신이 없는 듯 말끝을 흐렸다.
순간,
삶과 죽음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 아프게 다가왔다.
삶과 죽음의 접점이 없는 곳에서, 편지를 태워 그 사이를 잇는다는 것이 낭만적이고 슬프게 느껴졌다.
손편지라는 형식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편지를 죽은 사람에게 쓴다.
태운다.
죽은 이가 읽는다.
간절하면, 삶과 죽음도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일까.
몸이 연결되지 못하는데 언어만 연결된다면, 그건 더 아픈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딸아이에게 설명했다.
딸아이가 대꾸했다.
- 나는 잘 몰라. 그냥...나도 편지 한 번 태워보고 싶어서...ㅎ
나는 혼자 웃는다.
- 참, 아이들이란...왜 그런 게 해보고 싶을까?
아파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리워해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냥 단순히 판타지에 대한 흥미일까.
#인생에세이#손편지#삶과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