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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린스노우 Aug 21. 2020

깨어보니 중환자실 _

고양이의 밤

깨어보니 말을 할 수 없었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계속 이상한 꿈에 시달리다가 눈을 떴지만 안경이나 렌즈가 없으면 앞이 거의 안보이는 

심각한 난시라서, 여기가 어딘지 쉽게 알아 차리지 못했다. 


멍한 상태로 시간이 좀 지났을까,  남편이 와서 대학병원 중환자실이라고 했다. 

때문에 지금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고, 자면서 종종 호흡기를 빼버리는 위험한 상황이 생기는 환자들이 있어 양 손이 묶인 상황이라고 했다. 


인과관계를 쉽게 알 수 있는 일도, 잠이 들어 있는 동안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를 긴 시간 처방받아서 인지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 에크모에 연결되어 있는 동안 환자는 몸이 회복될 때까지 수면유도제와 강력한 진통제로 잠을 재워 놓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후유증으로 섬망증상이 생겼는데,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환시, 환각이 현실이라고 생각되어 간호사선생님에게 얼토당토않은 말과 행동을 많이 했던 것같다.

곁에서 보고 느낀 결과 정말 중환자실 간호사 라는 직업은 사명감이 없다면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본 선생님들은 정말로 그랬다. 그 힘든 케어를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고생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가득이다.








입원 기간 동안 의지로 할 수 있었던 일은 입원실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과 온 종일 시계를 보며 하루에 두번 허락된 면회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였다. 남편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으로 꼬박꼬박 면회를 와주었다. 말도 표현도 하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송구영신의 날도, 새해 첫 날도 중환자실에서 누워 보냈다.

의례히 외치던 해피 뉴이어! 라던 말이 새삼 눈물겹게 느껴졌다.



긴 겨울이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 후에 연화식을 시작할 무렵에도 손에 힘이 없고 감각이 무뎌져 숟가락 쥐는 아주 쉬운 일조차 힘들어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생각되었다.

크게 아프면서 깨달은건, 생각보다 많은 소중한 이들이 내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과 응원하고 있다는 것.

건강이 좋아진 건 팔할이 그들의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2월에 퇴원을 했으며 재활 후 처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병실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뿍 담아서 그렸다. 

2019년의 시작을 보지 못할 뻔 했던 나의 봄은 애틋했고, 소중했으며, 다정했다.








마린스노우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만들고,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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