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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Oct 31. 2020

소자본 창업지원 - 실전창업교육

 아 떨린다, 떨려! 오랜만에 하는 발표다. 친구들과 기획한 앱을 평가받는 시간이었다. 심사위원들을 포함하여 약 30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담담한 척 미소를 지었지만, 명치는 타 들어가고 있었다. 청심환이라도 먹었어야 했나.


 이 실전창업교육은 창업진흥원이 주관한다. 지원금액은 천만원! 최소기능을 가진 앱을 만들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앱의 이름은 ‘오이마켓’. 눈치 챘겠지만, 당근마켓의 아류작이다. 당근은 ‘당신의 근처’를 의미한다. 우리 앱의 ‘오이’는 직장인들의 주 ‘52(오이)’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을 뜻했다.


 오이마켓의 로고, 나름 귀엽지 않은가?

업무시간에 득템하자!


 직장인들이 업무 시간에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우리가 바랐던 것은 팍팍한 업무 시간에 개이득 중고 상품을 얻었을 때 느끼는 행복 같은 거였다. 다른 앱과 차별화를 두었던 점은 한 건물 기능이었다. 오이마켓 앱을 사용하는 같은 건물 내에 직장 사람들을 연결시켜 줌으로써 편의성을 제공하고 신뢰도를 높일 의도였다.

 

 앱의 시작은 양갈비집에서였다. 우리는 양갈비를 가운데 두고 4인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붉은 살점이 신선해 보였다. 반들반들한 육질 표면에 로즈마리가 향을 더하고 있었다. 물론, 쏘맥이 빠질 수 없다. 철판에 닿은 고기가 익기도 전에 우리는 쏘맥 2잔을 연이어 원샷했다. 취기가 서서히 올라왔다. 우리는 산적마냥 뼈 채로 고기를 잡고 뜯어먹었다. 살점 사이로 빠져나오는 육즙과 기분 좋을 정도로만 풍기는 양의 향이 조화로웠다.  


양갈비집에서 도원결의!


 “맛있으니까 한 잔!”

 테슬라 병들이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H가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 모임을 위해 미리 준비한 말이 있었던 듯했다.

 "나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


 우리는 모두 H를 바라보며 경청했다. 결론은 중고거래 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니 앱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2019년에는 중고거래 시장이 활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기사가 연이어 나오고 있었고, 얼마 전에는 당근마켓이 중고나라를 제치고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리는 H의 제안에 동의했다. 모두들 신나는 일 하나 생겼다는 듯이 눈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좋아. 그럼 다 같이 해보는 거다. 원 샷!”

 그렇게 우리는 양갈비집에서 잔을 부딪치며 도원결의했다.


 앱 만들기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리는 나라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실전창업교육을 신청했다. 이 교육은 경기도 시흥에서 진행되었는데 주말마다 왕복 4시간 거리를 부지런히 출퇴근했다. 그리고 아이디어 디벨럽을 위해 주 2회, 내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화이트보드를 가운데에 두고 각자 가져온 노트북들로 아이디어를 구체화, 가시화해 나갔다.


 약 8개월 간의 여정. 오늘은 이 여정을 발표하고 평가받는 시간이었다. 사실, 발표 시작 전에 이런 환상도 품었었다. 이 아이디어가 좋아서 심사위원 중 한 명이 투자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김치국을 시원하게 들이마셨다. 한 친구는 잘되면 당근마켓에 팔겠다라든지 카카오에 팔겠다라든지. 생각만 해도 설렜다. 뻔뻔하지만 한 번쯤 달달한 꿈은 꿔 볼 수 있는거 아닌가?


 나는 인생의 갈림길에 왔다고 느낄 때, 충동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좋게 말하면, 본능이나 직관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길이 맞다’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 몸은 이미 움직인다. 움직이고 경험하는 와중에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있구나’ 라는 순간이 관찰 또는 발견되는 것 같다. 그 발견들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그 길에 대한 확신이 조금씩 쌓여가는 것 같았다. 이런 면에서, 나는 목표 지향적이고 계획적인 성격은 아니다. 견디면서 해 나가는 타입은 아닌 것이다.


 사실, 앱 만들기는 나를 움직이는 동력인 ‘발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몇 번의 설렘정도는 있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그냥 일이 하기 싫은 건 아니고? 맞는 말이다. 앱을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결국엔 조직을 꾸려야 하는 일이기에 두려움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창업교육 중에 수많은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업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지도 않았고.


 이 앱의 서비스는 시작되진 못했고 친구들과의 10년짜리 안주 거리로 끝이 났다. 그렇지만, 회사를 벗어나서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내는 첫 번째 시도였다. 좀 더 여러가지를 시도하다보면, 다른 전환점을 또 만나지 않을까?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등록되어 있지만, 작동은 안되니 다운은 받지 마시길^^;;)


p.s 창업 아이디어는 있는데 예산이 부족하거나 시작 방법을 모를 때, 실전창업교육이나 예비창업패키지를 추천한다. 내 자신이 사업 마인드가 있는지 검증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나의 경우는? 사업은 빠르게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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