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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Dec 30. 2020

나는 어쩌다 서울에 살게 된 걸까?

  집으로 가는 길에 막걸리가 생각났다. 곧바로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4인 테이블이 15개 정도 있는 널찍한 공간이었다. 나는 TV가 가장 잘 보이는 센터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보면서 ‘감자탕을 먹을까’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순댓국으로 결정했다.


“이모님, 여기 순댓국이랑 막걸리 하나씩 주세요. 배추김치는 주시지 말고요. 양파절임만 더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중국산 김치의 위생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지만, 그것보다도 이곳의 김치는 단맛이 별로다. 비주얼도 익숙하지가 않다. 내가 봐오던 붉은색이 아닐뿐더러 희멀건 배추 표면에 물기가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양파절임과 막걸리가 먼저 나왔고 누런 양은 잔에 막걸리를 따랐다. 그 순간, 뜬금없이 ‘내가 어떻게 서울에 살게 된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서울에 살기 시작한 그때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서울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영향이었는지 수능이 끝난 바로 다음날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나는 재수를 택했고 누나가 살고 있는 개포동 집으로 향했다. 나는 막내라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자랐다. 서울에 먼저 자리를 잡은 누나 집에서 지낸다는 것은 많은 혜택들 중에 하나였다. 직장생활을 하던 누나는 아침에 나를 차에 태우고 학원에 바래다주었다. 이른 출근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피곤했을 텐데 티 한 번 내지 않았다. 항상 수험생인 나를 배려해주었다.


 2006년은 놀기 좋은 해였다. 재수 학기를 시작한 3월. 대한민국이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2006 WBC 야구 때문이었다. 한국의 성적은 6승 1패! 준결승에서 일본에게 당한 단 한 번의 패로 다소 이상한 3위를 차지했다. 나는 미국전을 학원 매점에서 응원했는데 그곳에는 15인치 정도의 브라운관 TV가 있었다. 하나둘씩 학생들이 모였고 뒤통수가 볼록 튀어나온 TV에 모두들 시선을 모았다.  


 1회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타석에 들어선 이승엽 선수는 솔로 홈런을 시원하게 날렸다. 환호성이 터졌다. 4연승을 달리고 있었던 우리나라가 미국까지 이긴다는 기대감에 아드레날린이 분출했다. 경기는 계속되었고 이승엽 선수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모두들 홈런 한방을 또다시 바라는 눈길이었다. 그런데, 미국팀은 이승엽 선수의 타격이 무서웠는지 볼넷으로 출루시켜 버렸다. 관중석에서 ‘우~~~’ 야유가 터져 나왔다.

 다음 타자는 김태균이었지만 감독은 최희섭을 대타로 타석에 세웠다. 그는 그동안 성적이 매우 부진했는데 야구를 모르는 나에게는 굉장히 의아한 대타 결정이었다.


 “아, 뭐냐! 무슨 최희섭이냐!”

 매점에 있던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불만이 터져 나왔다. 2사 1, 2루 상황. 모두가 한숨을 쉬고 있을 그때, 공은 던져졌고 최희섭 선수는 방망이를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리는 풀스윙이었다.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 나는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됐다! 됐다! 됐다! 됐다!”

‘됐다’를 외치는 동안 공은 관중석을 향해 날아갔다. 모두들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고 테이블에 올라가서 만세 자세를 취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의 열기는 2002년 월드컵을 떠오르게 할 정도였다.


 월드컵이라! 2006년은 독일 월드컵의 해이기도 했다. WBC 여운이 꺼지려고 할 때쯤, 월드컵이 개막했다. 모든 경기가 새벽시간에 편성되어 있어서 생방송을 보진 못했고 스포츠 하이라이트로 갈음했다. 프랑스전이 있던 날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이라이트를 확인했다. 결과는 1:1 무승부. 박지성 선수의 동점골에 분개한 갈라스의 포효가 기억난다.


 그즈음, 친구가 전화 왔다. 먼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던 H였다.


“경기 봤냐?”

“재수생이 무슨 월드컵이냐!”

“야, 오늘 하루 논다고 성적 안 달라져. 놀 때 놀아야 공부도 잘 된다. 나와!”

“뭘, 나와. 됐어”

“너 학원이 어디라고 했지?”

“강남역”

“강남? 놀기 딱 좋은 데에 있네. 지금 출발한다!”

“야, 나는 어디로 가면 되는데?”

“강남역 6번 출구에서 보자”


 내 재수학원은 강남역 국기원 쪽에 위치했다. 만날 장소는 강남역 6번 출구였다. 신분당선이 개통되면서 지금은 10번 출구로 변경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10차선 정도 되는 강남대로변만 봐왔다. 지오다노 뒤편 골목이 네온사인으로 가득 차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NB, Hallem 클럽이 있던 거리. 어깨동무한 남자들과 팔짱 끼고 다니는 여자들. 친구들끼리 애정표현으로 내뱉는 욕설들과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 무관심인 척하지만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들. 처음 보는 서울의 밤이었다.


  H는 대왕 계란말이를 파는 가게로 나를 데려갔다. 가게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 다시 찾아봤다. ‘악바리’라는 가게였다. 문을 열자마자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고등학교 대강당에 학생들이 모여 선생님이 ‘조용!’ 하기 전까지 신나게 떠들어대는 느낌이었다. 나는 얼른 여기에 동참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점원은 우리를 2층 다락방 같은 곳으로 안내했다. H는 곧바로 계란말이, 소주, 맥주를 주문했다. 내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술을 마신 것 이때였다.


 친구는 나에게 몇 가지 안부 소식을 묻다가 신입생 이야기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MT, 신입생 신고식, 동아리 활동, 미팅, 소개팅, 체육대회 등. 약간의 영웅담을 곁들이면서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딸기, 당근, 배스킨라빈스 등, 술 게임은 뭐가 이렇게 많은지, 친구는 이런 게임도 모르냐며 나한테 한 소리했다. MT 갔다가 장기자랑에서 1등 한 이야기로 마무리가 될 때쯤, H가 말했다.


“야, 열심히 해라. 재밌는 것들 천지다. 서울에 같이 있으면 얼마나 재밌겠냐?

2차는 어디로 갈래?”  그리곤 소맥잔을 비웠다.


 서울에 어쩌다 있게 된 걸까. 그 해, 서울에서의  WBC, 월드컵과 강남거리는 스무 살의 눈에 호기심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얼마나 재밌겠냐고 묻던 친구의 말에 서울 속에 있는 나를 상상했다. 그때, 나는 정말로 서울에 있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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