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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비바티 Apr 23. 2024

나는 왜 캐나다 영주권도 포기하고 한국에 살고 있을까

후회가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일이 무엇이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없이 캐나다에서 보낸 시간이었다고 답할 것이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것도,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되어서 몇 년 살다 온 것이지만,

한국에만 살 때는 상상도 못했던 넓은 시야를 가지고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것이 전부이고 그게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살던 곳은 이 커다란 지구에서 너무 작은 곳이었고, 나에게 당연한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일이기도 했다.


미국 방송을 보다보면 캐나다 사람들의 친절과 상냥함을 놀림거리로 삼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서울이라는 인구 밀집도 높은 곳에서 삶에 찌든 사람들에 치이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그들의 친절이 너무 좋았다. 생판 모르는 남이 잔돈이 없어 버스를 못타는 것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대신 내주는 사람들.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곤란해 보이는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봐주는 사람들. (물론 거기도 못된 사람들도 있고 남 신경 안쓰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내가 살던 곳 (나에게는 또다른 고향이다) 사진은 향수병에 눈물이 나서 잘 못볼 정도로 그곳이 그립지만, 나는 다시 돌아갈 계획은 없다.


혼자 호숫가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는 게 참 좋았다.


어렵게 취득한 영주권이 아깝지 않냐고 하면 당연히 아깝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아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영주권 취득을 알리는 편지를 받은 순간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날 정도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캐나다 영주권에는 최소 거주 기간을 채워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5년의 기간 동안 총 2년에 해당하는 기간을 캐나다 땅에서 살아야 영주권 카드를 갱신할 수 있다. 5년 중 2년이라면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국은 단기간 방문만하고 캐나다에서 평생 살 계획이 아니라면 몇 년은 이 나라에서, 또 그 다음 몇 년은 저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만약 배우자가 캐나다 사람이었다면 어디에서 같이 살든 상관 없지만 아쉽게도(?) 내 짝은 전혀 다른 곳에서 온 사람.)


그리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가족.

내가 캐나다에서 살던 곳은 자연이 너무나 아름다워 캐나다 여행 시 꼭 방문해야 할 곳으로 늘 손꼽히는 곳 중의 하나이지만, 나는 행복하면서도 그런 풍경을 우리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쓸쓸했다.

사실 처음 1, 2년은 그저 새로운 생활이 즐겁고 힘들고 신기해서 내 삶에 집중하느라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혼자 떨어져 생활하던 몇 년 동안 나는 가족들의 삶에서 동떨어져 있었고, 크고 작은 일들, 기쁘고 슬픈 일들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향수병에 눈물을 흘리는 밤이 있더라도, 한국의 팍팍한 삶에 지쳐도, 엄마가 허리 아파할 때 주물러드리고 조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할 때 반차를 내고 올 수 있는 지금이 많이 감사하다.


가족만큼 큰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유가 되었던 다른 점들도 있는데,

언어 실력이 많이 늘어 의사 소통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졌어도 여전히 ‘외국인’이라고 느끼는 것에 대한 피로함, 그리고 한창 미래를 설계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할 20대에 그저 편한 현실에 만족하고 사는 대로 살게 되던 환경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정말 열심히 살게 되던데.)


나는 이제 겨울이 좋다.


이번에 출국하면 다시 캐나다에 영주권자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을 알고 떠나 한국에 돌아온 것이 벌써 6년 전. 그 동안 가족들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나는 충주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30대도 얼마 남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삶이라는 게 그렇듯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있었지만, 캐나다를 떠나기로 한 내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았다면 무엇을 놓치는지도 잘 알지 못했을 감사한 순간들을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6년은 긴 시간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이제 한국에서의 삶에 피로를 느끼고 있는 나와 남편은 이제 어떻게 하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많은 궁리를 하고 있다. 

영어도 못하면서 겁도 없이 캐나다로 떠나 청소일을 하면서도 행복했던 20대 초반과는 같지 않아서, 타국에서 바닥부터 시작하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경력을 잘 이용해서 우리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한국에만 오래 살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는 할 줄 아는 게 많으니 가능할 거라고 서로를 응원하는 중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성공 경험담을 풀어놓을 수 있기를 바라며.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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