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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비바티 Aug 16. 2024

살기 위해 떠난 오사카 여행기 2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자의 자유로움


내 마음 속의 나는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인데,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남편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운전도 잘하고, 맛집도 잘 찾고, 덩치도 커서 보디가드도 되는 이 사람과 여행을 다니는데 익숙해져 있다 보니, 쉽게 혼자서 어딘가로 떠나는게 쉽지는 않았다.

아마 마지막으로 혼자 여행을 했던게 한 4년쯤 전, 남편이 가족들을 보러 2주 정도 사우디로 휴가를 갔을 때였을 것이다.

온전히 내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찾아다니며 오롯이 나의 만족을 위해 움직이는 시간이 참 달콤했던 기억이 있는데, 왠지 그 이후로는 다시 그 경험을 재현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 지치고 지쳐 혼자 힐링을 위해 떠난 해외 여행에서는, 그 몇년 전의 짧은 나홀로 국내 여행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까지 즐길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아무것도 몰라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여행자의 자유로움


내가 익숙한 언어와 환경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어려움이 따른다는 말이지만, 또한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운 것이라는 말도 된다. 그리고 누가 봐도 이방인이고 여행자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당연한 규칙과 문화를 몰라도 어느정도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나는 매우 소심해서 한국에서는 핀잔을 들을까봐 지레 겁을 먹고 중/노년의 직원들에게는 질문을 못하고 불편하게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사카 공항에서 시내 가는 전철을 못찾다가 플랫폼에 있는 할아버지 직원 분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것도 잘 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창가 자리에 앉아 시내로 향하는 전철 안의 나는 더이상 팀장 때문에 자존감이 깎이고 회사에 실망한 사람이 아닌, 창 밖에 지나가는 나무 하나, 새 한마리가 신기한 여행객이었다.

전철 안 전광판을 계속 확인하며 내가 아까 할아버지의 안내를 잘 알아들은 게 맞나, 잘 가고 있는게 맞나 의심하고, 열차를 갈아타야 할 것 같아 괜히 내려서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그런 경험마저도 재미있었다.



이방인이라도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주변 사람들을 잘 보고 행동을 따라했는데, 예를 들면 지하철을 기다릴 때가 그랬다. 성인 키보다 낮은 스크린도어 앞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둘러보니 여기는 스크린도어 바로 앞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라고 비워두고, 오히려 두발짝 쯤 떨어진 곳에서부터 줄을 서고 있는 것 같았다. 일본은 지하철 안이 매우 조용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실례라고 여기 저기서 보았는데, 일행끼리 대화를 나누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는 것은 한국이랑 같더라.

지하철 손잡이 높이가 전반적으로 낮은 것이 너무 귀여웠고, 광고에도 캐릭터나 만화가 많이 그려져 있는 것이 참 일본답다 싶어 흥미로웠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모두가 아래를 보고 있을 때 나 홀로 고개를 들어 광고를 보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즐거워했다.



무계획의 자유로움


MBTI로 이분화 하자면 나는 일정과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파워 J인데, 여행할 때만은 누구보다도 즉흥적인 사람이 된다. 그래서 힐링 여행의 첫 날, 첫 끼는 맛있고 좋은 걸 먹고싶다 생각을 하면서도 딱히 검색을 해보지는 않았다. 호텔 직원한테 추천이나 받아볼까 하는 느슨한 생각으로 숙소를 향해 지하철 출입구를 나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아름다운 강 전경에 바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이 숙소를 잡을 때 넓은 오사카 시내 지도를 노려보며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강이 있는 지역으로 다소 대충 정한 것이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지하철 출입구 번호를 몰라 조금 멀리 있는 출입구로 잘못 나온 것이었는데, 잔잔한 물결의 강과 테라스 카페들, 그리고 평화로운 저녁 하늘이 반겨주었다.

그렇게 약간의 우회를 거쳐 숙소로 가는 길, 야외 테라스가 있고 조명이 분위기 있게 밝혀진 카페 겸 레스토랑을 보았고, 호텔 체크인 후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식사 메뉴로는 파스타가 몇 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친절한 직원이 추천해주는 파스타와 따뜻한 차 한잔을 시키고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선선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부산함이 한차례 지나간듯한 평일 저녁의 평화로움을 즐기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을 향하는 직장인, 연인과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젊은 커플, 무언가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타지에서의 첫날밤을 만끽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고,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좋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 평화와 행복감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들었다.



이튿날부터 나는 자전거를 많이 탔다.

일본은 자전거를 타는 문화가 많이 활성화 되어있다고 들어서 나도 체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찾아보니 일본 휴대폰 번호가 없어도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전기 자전거 앱이 있다고 해서 반신반의하며 시도를 해보았다. Luup이라는 앱인데, 다행히 호텔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사용 가능한 자전거가 있었고, 신용카드를 등록하고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아침에 들떠서 눈이 일찍 떠진 덕분에 길에는 차도 사람도 별로 없었고 새벽의 공기는 참 기분이 좋았다.

자전거 도로가 따로 없거나 인도가 좁은 곳은 차도 끝에서 자전거를 타야 했지만, 운전자들도 자전거에 관대한듯 배려를 많이 해주어서 곧 차도에서도 비교적 마음 편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오사카 성이 예쁘다고 하여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볼 예정이었지만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 배가 고파 포기하고 근처의 카페를 들어갔는데, 마침 강 뷰가 아름다운 테라스 카페였고 커피도 케익도 맛있었다. 그늘이 없는 자리였지만 휴대용 선풍기를 가져간 덕에 크게 덥지도 않았다.



경험이란 매우 주관적인 것이라서 같은 경험도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서 전혀 달라질 수 있는데,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마냥 모든 것이 즐겁고 신선했다.

심지어 불친절하고 틱틱대는, 갓 스무살 정도 된 것 같은 편의점 직원을 만났을 때도, 한국에서 가끔씩 카페나 올리브영 같은 데에서 보이는 불친절한 직원들 생각이 나며 ’한창 놀고 싶을 나이인데 일하는게 싫어서 대충 접객하는 친구들은 어디에나 있구나‘ 생각이 들며 웃음이 나왔다.

불평할만한 것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좋은 것과 새로운 것에 신경쓰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아마 그래서 나 혼자 하는 여행이 더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일행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신경쓰지 않고 나만을 만족시키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에게만 집중하며 나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오사카에서의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땅의 여행객이었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거리 만큼 나의 고민과도 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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