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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Dec 28. 2023

힘들어도 학원에서 쉬고, 공부하면서 버티자.

30_본인이 선택했으면 후회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것 밖에 없다. 


“대학은 여름에 하는 공부로 갑니다. 5월까지는 학원 적응하고 개념 공부하느라고 정신 없었을 겁니다. 물론, 지금도 개념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학원 수업도 기출 위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더불어 이제 날씨 덥다고, 놀러 가고 싶다고, 힘들다고 할 수 있는 시기인 만큼 넋 놓고 그냥 흐지부지 공부하다간 시간이 훌쩍 지나갈 갈 테니 정신 차리고 공부합니다.”


담임 선생님은 휴가 복귀한 다음 날에 바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분들과 상담해 보면 국어, 수학 공부 비중이 굉장히 높습니다. 성적이 잘 안 나오고 공부할 게 많다 보니 여기에 시간 쏟는 건 당연한데, 영어와 탐구를 소홀하게 했다간 뒤통수를 세게 맞을 겁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밸런스를 맞춰 영어와 탐구도 공부 비중을 잡고 꾸준히 하세요.”


그런데 내 귀에는 담임 선생님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지난 정기 외출을 갔다 오지 않은 나는 계속 후회하며 멘탈이 나갔다.

나를 볼 때마다 친구들은 대단하다고, 잔류 동안 공부 열심히 했을 거라고 치켜세우지만 속은 썩어 문들어져갔다.


게다가 정기 외출 전까지 같이 피곤했던 애들이 쌩쌩한 상태로 돌아오자 집에 안 간 것이 더욱 후회되었다.

물론 3박 4일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한 애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공부는 안 했기에 지금이라도 외출해서 집에 갔다 올까 고민한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보기 전까지 2주 남았고, 주말도 남아있었다.


“하아. 왜 가라고 할 때 안 가고, 지금 간다고 그래?”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이렇게 학원에 남아서 공부하는 게 힘든 줄 몰랐어요.”

“사람이 말할 때 좀 듣지.”

“딱 이번 주 주말만 집에 가서 푹 쉬고 올게요.”


외출 건으로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하기 위해 담임실에 왔다.

담임 선생님은 이야기를 듣자 한숨 쉬며 고민에 빠진 눈치였다.


“외출 안 될 것 같은데?”

“네?”

“부모님이 너 데리러 오실 수 있니? 내가 알기엔 둘 다 일하셔서 안 되는 걸로 알고 있고, 네가 대중교통 이용해서 집에 간다 해도 편도로 4시간 정도 걸려.”


그랬다. 기숙학원은 외진 곳에 있어서 교통수단이 열악했다.

여기서 버스 터미널에 가려고 해도 택시를 불러야 했고, 버스 터미널에서 집에 가는 고속버스는 흔치 않아 오래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면 그곳에서 또 버스를 타야 했고 양손에는 짐마저 있을 것이었다.


“네가 잔류 선택했을 때, 부모님이 개인적으로 나한테 연락도 왔었다. 정말 우리 애가 잔류하는 게 맞는 건지.”

“그래서요?”

“당연히 나는 집에 가는 게 좋다고 이야기했지. 부모님도 마찬가지였고. 근데 네가 잔류하겠다고 고집부리니 나나 부모님이나 수락한 거지. 누가 강요한 게 아니잖아?”


담임 선생님 말대로 정기 외출 기간 동안 학원에 남은 건 내 의사였고, 분명히 담임 선생님은 다시 한번 고민해 보라고 만류했었다.

이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 학원에서 있다간 정말 컨디션이 엉망 돼서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망칠 것 같아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치만 집에 가고 싶어요. 제발요!”

“내가 편의를 봐줄 테니 여기서 쉬는 건 어때?”

“여기선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에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그 말에 담임 선생님이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기숙학원에선 매 시간마다 수업 종과 쉬는 시간 종이 들리고, 혼자만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회복실에서 쉬더라도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학생들이 왔다가는 공간이기에 내 집의 방만큼 혼자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외출하려면 부모님 허락은 필수니까 지금 부모님이 통화 가능한 지 확인한 다음 물어보자.”

“네. 선생님.”


말과 함께 담임 선생님은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바로 연락했다.

신호음이 여러 번 울리고 바로 건너편 너머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님. 진수 학원 담임입니다. 잠깐 통화 괜찮하세요?”

-네. 진수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음... 며칠 전에 학원 정기 외출이 있었고, 진수는 학원에서 남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너무 힘들어서 주말 동안 집에 갔다 오고 싶어 하다고 하네요.”

-그래요? 그런데 저희가 일 때문에 데리러 갈 수 없는 상황인데요.

“네. 알고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스스로 가는 것도 편도로 약 4시간 정도로 걸려서 간다 하더라도 더 피곤이 쌓이지 않을까 싶네요. 근데 진수는 꼭 외출하고 싶다고 하고, 학원에선 부모님 허락이 필요해서 전화하게 되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나와 이야기했던 내용을 엄마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지금 핸드폰은 스피커폰 상태가 아니지만, 소리가 커서 귀를 기울이면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좀 당황스럽네요. 혹시 진수하고 통화 가능하나요?

“네. 바로 옆에 있으니 학원 전화기로 전화시킬게요.

-네. 감사합니다.


엄마의 말에 바로 나는 담임 선생님 책상 위에 있는 학원 전화기로 엄마 핸드폰 번호를 눌렀고, 신호음이 한 번 울린 후 바로 연락을 받았다.


“어, 엄마!”

-그래. 전수야. 선생님한테 연락 왔었는데 집에 오고 싶다고?

“으, 응. 학원에 있는 거 너, 너무 힘들어서 지, 집에 가고 싶어...”

-아들. 울지 말고 말하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나고 목소리가 울먹거린다.

엄마도 당황한 기색이 있으나 나를 달래주며 울음을 그치게 한다.


-실은 네가 학원에 잔류한다고 했을 때 아빠하고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야기를 했었어.

“진짜?”

-응. 


왠지 기대가 된다. 당장이라도 부모님이 데리러 올 것 만 같은 느낌이다.

엄마의 입에서 외출하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 희망을 가진다.


-외출하지 말고 학원에서 공부했으면 좋겠다.

“뭐, 뭐라고요?”

-쉬어도 학원에서 쉬면서 공부하자. 아들


순간 벼락이 머리에 꽂히는 것 같았다.

설마 이렇게 나한테 냉정히 말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네가 잔류한다고 했을 때, 담임 선생님은 집에 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았던 건 네 결정이었고. 이렇게 힘들다고 금방 바꿔버리고 나와 버릴 거면 왜 기숙학원에 있는 거니?

“그건...”

-힘든 일이 있으면 이렇게 똑같이 도망칠 것 같고, 이렇게 한 번 나오면 다음에도 외출할 것 같으니 그냥 힘들어도 거기서 버티라고 아빠가 이야기했었어.

“그, 그렇지만 진짜 힘들단 말이에요.”

-만약 나온다 해도 지난번에 집에 왔을 때처럼 PC방 가고 놀 거 아니니? 그동안 나왔을 때 한 행동들이 있어서 이번에도 나오면 이럴 것 같아.

“하지만...”

-진수야. 힘들어도 학원에서 쉬고, 공부하면서 버티자. 절대 집에 오는 건 없어. 담임 선생님한테는 따로 이야기해 놓을게. 알았지? 엄마가 일이 있어서 먼저 끊는다.


전화를 끊자 수화기 너머로 신호음만 들리고 배신감이 든다. 

엄마 말대로 학원에 남은 것이 내 결정이었으나, 자식이 아프고 힘들다는데 여기서 버티라는 말을 들은 것이 억울하기만 하다.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한동안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멍 때린 채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네. 알겠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그 사이 담임 선생님은 엄마에게 온 전화를 받고 끊었다.


“진수야, 자습실로 돌아갈래? 기숙사에 들어갈래?”

“기숙사요?”

“어. 어머니 부탁으로 오늘 하루만 기숙사에 일찍 들어가서 자는 걸로 하자. 학원에는 내가 이야기해 둘게.”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날 보며 담임 선생님이 선택권을 줬다.


“여기 계속 앉아있지 말고 자습실로 가서 공부하던가, 아니면 기숙사로 가서 자.”

“잠깐만요.”


그런데 정작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헷갈린다.

외출이 무산된 지금 마음은 공부를 해야 하는데, 몸은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두 선택지 중에 결정을 내려야 하자 무엇을 택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고민하고 있는 거면 그냥 들어가서 자. 지금 상태론 공부 안되겠다.”

“네? 네. 알았어요.”

“퇴실 전까진 3시간 남았지? 내가 기숙사에 갔는데 깨어있거나 딴짓하고 있으면 봐주는 건 없다.”

“네.”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담임 선생님이 결정을 내려준 후 기숙사 문을 열어주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기숙사로 갈 수 있는 문이 잠겨 있어 통행 카드나 등록된 지문 인식으로 문을 열어야 했다.


“일단 씻고 자자.”


정기 외출 전부터 고민했던 모든 것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여 있고, 엄마의 대답에 더욱 혼란스럽다.

특히, 몸이 너무 힘들다. 잠을 자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간단히 양치와 세수만 하고 바로 침대에 몸을 뉘었고,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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