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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B Jan 29. 2021

비바리움 Vivarium

전형적인 것의 잔해


비바리움은 개봉 당시 영화 플랫폼 사이트에 있었음에도 굳이 극장 가서 본 영화다. 기괴한 영화들은 극장에 가서 봐야 그 감각이 더욱 느껴진다. 집에서 볼 때는 느껴지지 않는 기분 나쁨이 있다. 이 영화의 경우 색감이 좋은 영화나, 보고 나면 기분 나빠지는 영화들을 가장 좋아하는 이상한 취향을 가진 나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해버릴 영화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취향은 아니었지만 해석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검색창에 비바리움을 치면 '비바리움'보다 '비바리움 해석'이 먼저 나오는 이유도 영화를 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글에서는 전적으로 나의 생각과 해석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이 매우 다양한데, 그 해석들을 인정함과 동시에 개인적인 생각들을 덧붙이는 정도로 정리할 것이다.




고정관념 깨부수기

"한 사람의 상상은 상상이 아니라 경험과 이성이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대한 세상의 현실이다."  -르네 마그리트


비바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를 보기 전, 스틸컷을 봤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바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었다. 굳이 하나하나 따지자면 비슷한 요소가 있나 싶지만, 영화 속 움직이지 않는 구름, 줄 지어 늘어져 있는 집들의 모습이 르네 마그리트 작품과 비슷하다.



초현실주의는 기존의 질서와 규칙을 거부하는 다다이즘을 계승한 예술 사조로서, 다다이즘의 다소 폭력적인 모습을 부정하고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통한 작품 활동을 지향하였다.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통해 작품을 그려나갔다. '추방하는 것'이라는 뜻의 데페이즈망은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연출해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주는 기법을 말한다. 중절모를 쓴 신사의 얼굴 앞에 떠 있는 사과,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신사들 모두 이 데페이즈망 기법을 활용한 작품들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러한 일상적인 것을 이질적인 공간에 배치하거나 기이하게 표현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였다. "Make the most everyday objects shriek aloud, 가장 일상적인 물건들이 비명을 지르게 하기 위해서." 실제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을 아주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들이지만 그의 그림 속에서 그것들은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서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이 원래 목적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지 의심이 들뿐만 아니라 그것이 정말 그 자체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이러한 의심에서 커지게 된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인간의 조건>을 보면, 창문 너머 풍경과 그 풍경을 그린 듯한 캔버스가 있다. 그런데, 캔버스 위에는 캔버스와 똑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인가? 어디까지가 캔버스인가? 캔버스가 존재하긴 하는가? 이렇게 르네 마그리트는 당연하게 여기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부부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지금 말하는 "일반적"이란, 사회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것을 말한다. 그들은 여성과 남성 커플인가? 어머니는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다가가고 아이를 보호하는가? 아버지는 바깥일에 정신이 팔려 집안일에 관심이 없는가?



영화는 전통적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내려앉은 ‘전형적인’ 가족의 이미지가 그린다. 결국 괴물 아이를 감싸 안는 젬마. 땅 파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젬마와 자신의 건강조차 신경 쓰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 나가 있는 톰. 그 둘 사이에 이후 대를 이을 남자아이. 분홍색과 파란색 잠옷. 파란색 벽지의 아이 방. 영화는 이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위적인 기괴함을 느끼게 한다.

(이 모습을 전형적인 가족이라고 설명하는 게 많이 기분 나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가족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기괴함이 단번에 느껴지는 대사가 있다. 젬마가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묻자 아이는 "엄마"라고 답한다. 대답을 들은 젬마는 엄마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아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준비시켜주는 사람" 젬마는 그 일을 마친 후에는 무엇을 하냐 묻는다. 그리고 아이는 이렇데 답한다. "죽지"




내 집 마련의 꿈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다른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보고 싶어한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미지의 배반>을 보면 파이프 그림 밑에 이러한 설명이 쓰여 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파이프로는 담배를 태울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다. 우리가 그것을 파이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파이프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파이프의 역할을 하는 것과 닮아서이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파이프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이를 파이프라고 부른다.



영화 속 젬마와 톰이 갇힌 공간은 집이 될 수 있는가? 젬마와 톰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동산을 방문한다. 겉보기엔 괜찮은 동네에 정리된 집들, 쓰임새 있는 집 안 공간들을 보며 그 안에서의 새 삶을 꿈꾼다. 결론적으로 젬마와 톰은 그 집에 살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더 이상 그들에게 집이 아니게 된다. 젬마와 톰이 살게 되는 9번 집은 작지만 아늑한 마당과 욕실이 딸려있는 안방, 아이가 독립적인 성격을 키워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방, 모든 면에서 완벽한 모습이었지만, 그 속에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호자의 역할을 맡은 젬마와 톰은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잃어간다. 서로를 위로하고 사랑하던 모습에서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하려 애쓰고 눈을 마주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단순히 죽지 않기 위해 섭취하는 음식과 속을 알 수 없는 감시자 괴물 아이 사이에서 젬마와 톰은 집의 의미를 잊는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집을 가지고 싶어 한다. 새로운 집에서의 새로운 삶은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의 평생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이 중요한지, ‘새로운 집’이 중요한 지 생각해봐야 한다. 



생태계

"밝은 대낮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낮은 언제나 절망스러운 세상을 비추기 때문이다."  -르네 마그리트


영화의 제목인 비바리움이란 관찰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을 사육하는 공간을 말한다. 다시 말해 '작은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젬마와 톰은 괴물 아이를 양육하기 위한 비바리움 그 자체임과 동시에 관찰당하는 비바리움 속 생명체이다.

왜 젬마와 톰은 비바리움이 되었을까? 단지 그 부동산을 방문해서 일까?



영화를 끝까지 보면, 괴물 아이는 성인이 되어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된다. 이 아이는 숨을 거둘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집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을 또다시 집으로 데려가 또 다른 괴물 아이를 양육시키도록 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부동산을 방문한 사람 역시 젬마와 톰과 같은 여성과 남성 커플이다.

괴물 아이는 젬마와 톰을 감시했다. 그가 자라면서 본 아이를 양육하는데 적절한 표본은 여성 남성 커플의 모습이다. 그는 평생 젬마와 톰이 정말 ‘적절한’ 표본이 되는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아이가 본 유일한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목격한 장면들은 그가 가진 유일한 기준이 된다. 결국 그 아이는 자라서도 적절한 표본으로 여성 남성 커플을 선택한다. 

한 생명이 살아가는 동안 주변 환경을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본 만큼 생각하고 생각한 만큼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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