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 사는 맛
어둠이 가득 찬 창문 밖의 세상에는 멀미 중인 봄이 있다.
봄인가 기웃거리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벚꽃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화려하지만 짧은 그러나 강렬한 것이 벚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곳곳에 벚꽃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보면 말이다.
사실 올해는 벚꽃 축제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단지 사무실 앞에 피었던 벚꽃을 본 것이 거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어쩌면 아쉬움일 것이고, 어쩌면 바쁨의 흔적일 것이고, 어쩌면 감성이 마른 이유 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멀미를 동반한 화려한 봄은 이미 어제의 일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오랜만이지만 갑자기 친구를 만날 이유가 생겼다.
전원주택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말이다.
그 친구의 부모님이 제주도에 살고 계신다.
친구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고 계시니 30~40년은 족히 될 것이니 어쩌면 고향보다 더 고향 같을지도 모르는 곳이다.
더구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제주라니 뭐가 아쉬울까 싶기도 하다.
그런 친구 부모님이 이곳 고향으로 이사를 하고 싶어 하신다고 했다.
마지막 노후를 고향에서 보내고 싶으신 모양이다.
크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친구와 같이 전원주택 단지들을 둘러본다.
오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주도 이야기가 나온다.
부모님이 제주도에 계실 때에는 제주도에 가는 게 아무런 부담도 어려움도 없었다고 한다.
마음먹으면 제주에 가서 쉬다 오면 그만이었으니 여행 가는 기분이 아닌 고향 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부모님이 제주도를 떠난다고 하시니 문득 드는 생각이 이제는 제주도에 못 가는 게 가장 아쉽다고 했다.
남들처럼 여행계획을 세워 가족들이 같이 다녀오면 되는 거 아니냐는 내 물음에 친구의 반응은 다르다.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는 가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다.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간다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이해가 간다.
부모님 계신 고향과 부모님 안 계신 고향이 어찌 같을 것이며, 고향을 가족여행으로 다녀온다는 건 나라도 역시 쉽게 가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타지에서 고향을 그리며 살고 계시던 부모님이 귀향을 하신다는 결정에 차마 다른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더라는 친구의 말도 공감이 간다.
아무리 경치가 좋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제주도라고 해도 향수병이 생기면 다 무용지물일 테니 말이다.
사실 옆지기는 제주도에 1년 살이를 해보고 싶어 했다.
내가 정년 되직을 하면 자기는 제주도에 무조건 1년살이를 한다고 제안도 아닌 통보를 해 온 것이다.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원하면 그렇게 하라고 대답을 하고는 반신반의 중이다.
그래서 이사를 가지 왜 1년 살이냐고 물어보니 그렇게 오래 살 마음은 없다고 한다.
역시나 이제 와서 고향을 떠나기는 싫다는 뜻과 다를게 무엇일까 싶었다.
몇 군데 전원주택과 한옥 등을 두루두루 보여준 뒤 부모님 모시고 다시 둘러보라고 하고는 나도 사무실 일이 바쁜 관계로 헤어졌다.
퇴근 후, 아직도 진행 중인 정리와의 힘 겨루기를 계속해 본다.
잠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밤이 깊어만 간다.
내일을 위해 정리하고 아직은 좀 쌀쌀한 밤공기에 불을 피워본다.
어느새 4월이니 이제 불멍 할 기회도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괜히 불멍이 아쉬워서다.
깊어가는 어둠의 깊이만큼 감성도 깊어만 간다.
가만히 바라보는 불꽃, 거기에도 음악이 있고 평안이 있다.
캠핑의자에 앉아 불꽃을 바라보는 시간은 수고에 대한 작은 보상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들도 이런 사소함이 추억이 되고, 향수가 되지 않을까?
불멍의 시간에 달이 중천으로 떠오른다.
휴대폰을 꺼내 가만히 들이밀어 본다.
타향에서나 고향에서나 보이는 달은 같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달을 보며 고향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주도 보다 좋은 고향!!' 어쩌면 달에 비친 고향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밤은 깊어만 가도 모닥불 '타닥타닥' 따스한 연주는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커피 향처럼 깊게 고향 생각이 베어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