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

1

by 소향

불이 꺼지고 나면, 삶은 그제야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눈부신 조명 아래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다.
무심히 삼킨 말, 견뎌낸 시간, 스스로에게 흘려보낸 위로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은 언제나 가장 구석진 조용한 자리에 앉아 있다.

빛이 사라지면, 그제야 오래된 기억 하나가 스스로를 깨우고,

버린 줄 알았던 마음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다.

이름조차 붙이지 못했던 감정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그 잔상은 흐릿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을 ‘별’이라 불러본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는 ‘별’은 하늘에 박힌 광물 덩어리가 아니다. 환호를 받는 빛도, 누군가의 시선을 끄는 장식도 아니다. 오히려 별은 꺼진 불의 여운 속에 남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어떤 마음이다.

세상은 늘 환하고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타오르는 불꽃, 뜨거운 햇살, 박수 소리 등등.
사람들은 그 한가운데 서 있을 때 가장 자신답다고 믿는다.
하지만 삶은 늘 그렇게 환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조명이 꺼지고, 무대가 내려가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밤이 온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묻는다.
지금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전화기만 붙든 채 울다 잠든 밤,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던 아침,
말을 아낀 것이 아니라 말할 힘조차 없었던 날들.
그 순간들 속에서도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딘가 분명히 존재했던 무언가 덕분이었다.
불빛은 꺼졌는데도 이상하게 남아 있던 따뜻함.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만들어낸 조용한 불씨였다.

사람들은 흔히 꺼진 것을 ‘끝’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꺼진 이후에야 시작되는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난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참아낸 이들의 이야기,
이름도 없고 목소리도 없지만
누군가의 삶을 붙들어준 작고 단단한 마음들.

이 책은 그 마음들에 관한 기록이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고요 속에서,
한 번도 환호받지 못한 하루 속에서,
말없이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지만,
그렇게 조용히 누군가의 밤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의 흔적이 바로 별이라 말하기로 한다.
꺼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빛을 내기보다 자리를 지키는 존재.
눈부시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 어떤 따뜻함.

당신 안에도
그와 같은 것이 분명히 하나쯤은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은 희미해 보여도,
그건 언젠가 당신을 다시 살아가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
또 다른 누군가의 어둠을 지키기 위해
그 작은 불씨가 다시 떠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은 꺼졌지만,
그 자리에 여전히 무엇인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남은 것 하나가,
우리 이야기의 시작을 지금부터 안내할 것이다.


별... 삼각대 없이 100배 줌 촬영. 사진 : 소향
keyword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