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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이어쓰기 May 08. 2024

그런 건 없어요

1

삐걱삐걱. 어디서 나는 소리냐고? 늙고 병든 내 몸에서 나는 소리다. 


감기 때문에 골골댄다고 운동을 한동안 안했더니 온 몸의 근육이 아프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정말이지 이제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네. 선반 안에 쳐박혀 있는 닌텐도 링피트도 관심 좀 가져달라고 울고 있고,  큰 맘 먹고 샀던 러닝화도 여전히 새삥이다. 마음 같아서는 돈을 주고라도 근육을 사고 싶은 마음. 아, 나 돈도 없지.


막상 하고 나면 기분이 좋은데 왜 이렇게 시작이 어려운 건지. 스트레칭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에 유튜브 영상을 검색해본다. 그런데 영상 썸네일 하나가 유독 눈에 딱 하고 들어온다.


‘듣기만 하면 살이 빠지고 근육이 생기는 주파수’


또 웬 사이비 같은 영상인가 싶어 쓱 넘기려다 다시 썸네일을 노려보았다. 아니, 어차피 공짜인데 뭔지 확인이나 해볼까? 



2

속는셈치고 클릭한 영상. 

대뜸 몸을 편히 누이고 눈을 감으란다. 일단 시작이 좋군. 누워서 살빼기라. 


영상은 어떤 남성의 음성과 바이오리듬같은 물결이 치는 화면이었다. 그는 자신을 안내자라 불렀으며, 안내자가 이야기하는대로 체내 의식의 순환을 천천히 해보자 얘기했다. 


기분 탓인가 약간 몽롱해졌을 때쯤, 안내자의 목소리는 희미한 웅얼거림으로 바뀌어 있었고 안내자가 호명하는 신체의 여러 곳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약간의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내 호명하는 곳마다 뭔가 살 속의 꿀렁임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을 때는 나는 내 안의 깊은 심연 속으로 이미 들어가 있었다. 


그 때, 안내자의 웅얼거림과는 다른 작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거참, 여기 근육없다니까 그러네" 

그럴리 없는데 팔뚝에서 나는 소리같았다. 


"그래요 근데 어째. 맨날 먹는게 그 모양인데, 참나 근육양을 내가 어떻게 늘려" 


팔뚝은 누군가와 대화 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 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3

"어이, 이두박근씨, 일 그따위로 할꺼야? 시켰으면 해야지, 안된다 안된다~ 핑계가 뭐 그렇게 많아?"


누군가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유튜브에서 처음 안내자라고 말한 그 목소리였다. 


"아니, 안내자님, 그게 아니라 한번 보세요. 이게 지방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현장상황도 생각해주셔야죠."

"그래서 뭐, 못하겠다는거야? 그 자리 오겠다는 사람 많아. 딸린 식구들이 없나봐? 피하지방 하나 제대로 컨트롤도 못하면서, 어?"


겁박하는 안내자의 목소리에 이두박근씨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진짜 싸움은 바로 복부내장지방에서 일어나고있었다. 

"힘들어서 못살겠다! 최소 근육 보장하라! 보장하라!"

"먹고나서 나몰라라! 내방지방 진상규명 진행하라!"


이건 뉴스에서 보던 그 데모소리였다. 그 곳에서도 안내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내자는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들을 달랬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이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니까, 어차피 해야하는 일이라면 우리 차근차근 대화로 풀어보자고요."


피하지방들은 안내자의 목소리를 들은채만채 하며 구호를 반복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온 몸에서 크고 작은 소동들이 일어났고 진짜 범인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지육림을 즐기며 운동과는 거리를 둔 삶을 산 햇수가, 내 나이와 꼭 같으니 그들이 화내는것도 이해가 갔다.



4

'도저히 진정이 안되네요. 이 몸의 주인으로써 노동자들에게 한마디만 해주세요. 그들에게 말을 건다 생각하고 할 말을 떠올리면 자연히 듣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서 하시죠. 오늘은 근육과 지방들이 너무 비협조적이라 더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내자가 나에게 작은 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주인이 아니라 죄인이 따로 없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한담..

'저기.. 일단 죄송합니다.'

곳곳에서 벌어지던 크고 작은 싸움이 멈추고 웅성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제가 그동안 너무했던 거 같아요, 앞으로 운동도 하고 건강한 생활습관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 여러분, 이제 돌아가서 일들 하세요’

안내자가 말했다.

'이제 이 곳을 빠져나가겠습니다. 저를 따라 호흡을 가다듬고 주파수에 집중하세요.'



'살이 빠지고 근육이 생기는 주파수'는 사실 충격요법이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몸 속에서 벌어지는 대 혼돈의 사태를 마주하면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몸을 좀 움직여야겠다는 열의가 생겼다. 깊숙히 처박혀있는 링피트를 꺼내기 위해 선반의 짐들을 꺼내고 다시 쌓고 먼지를 털고 이 참에 선반 청소를 싹 했다. 빤딱빤딱한 새 러닝화를 꺼내고, 또 언젠가의 열정이 묻은 새 운동복을 찾느라 옷장을 한참 뒤졌다. 뒤적거리다가 엉망이 된 옷장도 한바탕 정리하고 나니 어제 벗어둔 옷가지가 눈에 밟혀 빨래도 돌렸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더니 꽤 뿌듯했다.


아, 힘들었다.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부터는 진짜 열심히 운동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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