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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Feb 17. 2024

아이는 Try가 안되잖아요.

아이없는 부부 8년 차

세상이 참 많이 바뀌긴 했다.

결혼 8년 차에, 여태 자녀가 없다는 대답에도  

'왜? 안 낳으세요?'라는 물색없는 질문을 아. 직. 은 받아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가족들에게는 결혼 직후 지체 없이 '딩크 선언'을 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지인들은 "늦지 않았으니 다시 생각해 보라"는 어른들의 종용은 그럼에도 수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우리 경우는 좀 달랐다.

'저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결정에 '그래, 너희 생각이 그렇다면'이라고 동의해 주셨고,

그 이후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이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첨언도 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지나가는 말로 아쉬움을 내비치신 일도 없다.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남편도 나도 아이를 잘 길러 낼 자신이 없었을 뿐이다.


다른 점이라면,  

남편은 좋은 부모가 될 자신감 부족을,

나는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 부족을 1순위로 꼽았다.




1인 가임여성 기준 0.77명.

OECD뿐 아니라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인구절벽, 인구재앙과 같은 SF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섬뜩한 표현까지 들려온다.   


이런 뉴스를 볼 때면 저출산에 본의 아니게 일조(?) 중인 나의 상황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오로지 우리 둘만을 고려한 선택이 한 국가의 존립 여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는 데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마음 한 켠에서는 '내 나이에 낳는 것도 가능은 한가?'라는 과거보다는 꽤 물렁해진 생각도 고개를 내민다.

그럴 때 남편에게도 넌지시 물어본다.


"여보, 혹시 생각 바뀐 적 없어?"


"난, 없는데."


남편은 한결같다.

물론 '절대 안 돼!'라기보다는 '그럴 마음이 여전히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조르면 달라질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조금이라도 확률이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어떤 사람은 50살에 첫 애를 낳았대~'라는 실체가 없이 떠도는 이야기에도 귀가 쫑긋하고,

귀여운 5살 조카를 품에 꼭 안고서 좋아하는 내 모습에  

"형님, 지금도 안 늦었어요~"라는  동서의 농담에 강한 손사래를 치면서도

집에 와서 한 번은 곱씹어보게 된다.  


물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이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절대, 결코, 죽어도 안 낳을 거야'라고 까지는 말하지 못할 뿐이다.  


내가 이렇듯 조금은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있다.

황당한 말이지만 '아이를 낳아서 길러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뭐든지 직접 부딪혀 봐야지만 좋고 싫음이 명확해지는 철저한 경험주의자이다.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는 분야는 학습보다는 '체험'하는 쪽을 우선하는 삶을 살아왔다.


숱한 소개팅에 시간과 돈을 쓴 이후에야 내가 선호하는 이상형이 정립되었고,  

술 마시고 토하며 생사를 오가는 과정에서 적정 주량과 속도를 알았다.

막대한 돈을 해외여행비로 쓴 이후에야 비로소 내가 남들만큼 여행에 취미가 없다는 사실도 알았고,

14cm 힐만 고집하다 디스크로 119에 실려 간 이후에야 플랫폼에서 내려오기도 했으며,     

태백산, 한라산, 지리산 등 종주 끝에 무릎 연골과 작별을 고한 이후에야 등산도 그만두었다.  






경험 과정에서 여러 모로 큰 출혈을 감수했지만 그만큼 배우는 것도 다양하고 확실했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것들이 내 삶을 더 혹은 덜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좋은 경험은 그 자체로 인생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험은 반면교사로서 미래의 훌륭한 이정표가 돼주었다.


그런데, 출산과 양육은 그럴 수가 없다.

'아이를 한번 낳아서 길러보는 경험'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에게 아이를 키우는 일은 흡사 고등학교 3년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수능시험장에 들어가라는 말처럼 두렵고 먼 이야기이다.


아이가 없고, 아이 계획이 없는 부부이지만 적어도 생물학적 무가임이 되는 순간까지  

출산과 양육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듯하다.


그만큼 단 0.1%라고 해도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은 여전히 나 자신을 선택의 기로에 데려다 두는 합리적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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