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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Sep 16. 2020

도련님, 그냥 이름 부를게요.

상호존중에 기반한 가족 호칭 재정리   

개인적으로 유독 입에 붙지 않는 '호칭'들이 있었다. 

'오빠', '언니'와 같은 가족이 아닌 연장자를 부르는 호칭이 그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좀 간지러운 표현처럼 느껴져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픈 관계에서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만난 모든 오빠, 언니들은 내게 일괄 '선배'로 통칭되었다. (형이라고 안 부른 게 다행..) 



도련님요?????


이처럼 입에 붙지 않는 표현은 고집스럽게 사용하지 않던 내가 결혼 후 강력한 호칭 챌린지와 마주했다.  

이 표현은 '언니', '오빠'처럼 개인의 취향에 따른 호불호와는 결이 좀 달랐다. 

뭐랄까. '그냥 이건 좀 확실히 아닌 것 같아'라는 느낌이 발가락에서부터 온몸에 구석구석 이온음료처럼 퍼지는 기분이었달까. 내 안의 투철한 반골기질이 또다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안돼... 조금만 진정해.. 아직은 아니야..' 


문제는 스스로를 납득시킬만한 적당한 구실이나 해명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련님', '서방님'은 그 자체로 21세기 디지털 시대와 맞지 않는 구시대 유물 같은 표현이었고 무엇보다 굳이 불러야 한다면 그 대상이 남편의 남자 형제가 아닌 내 남편이 되어야 마땅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공식 가족 모임에서 남편의 동생을 마주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은 잠시 이내 어떻게 불러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휩싸였다. 특히, 일부러 불러서 뭔가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되면 입에 자동 잠금장치가 발효되어 도무지 'ㄷ'자도 입 밖으로 나올 기미가 없었다.  그럴 때는 동생이 있는 위치까지 직접 가서 살며시 인기척을 낸 후 "여기,, 잠깐만 와서 도와주시겠어요?"라고 하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조금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시댁 어르신들이 잔뜩 모인 장소에서 "저기요!"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더욱 못할 노릇이었다. 


'내가 또 좀 유별나게 구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놈의 반골 DNA는 TPO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통에 나도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뉴스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도련님, 형수, 처제, 처남과 같은 '성차별적인 호칭 개선'에 대한 국립 국어연구원의 개선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올타커니!!!' 



도련님 대신 이름으로 부를게요


그 길로 즉각 시부모님께 발의했다. 나의 대안은 '도련님' 대신에 이름에 '씨'를 붙이는 것이었다.  이유는 도련님이 구시대적인 표현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이름'은 자신을 꾸미거나 숨길 수 없는 '본인 그 자체'이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결혼을 하면 남편을 제외한 남편의 가족 모두는 내게 '초면'이고 '어렵거나 불편한' 관계인데 그 상황에서 입에 붙지 않는 어색한 호칭까지 사용한다면 10년이 흘러도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러한 호칭'은 가족 구성원에게 자의와 무관한 '가면'을 씌우고 그에 걸맞은 '역할'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데에 있었다.  차라리 조직 사회라면 과장, 차장 직급 호칭에 맞게 급여 인상이라는 보상이라도 따르지만 가족 호칭은 역할과 의무만이 주어지는 반강제적인 성격마저 지녔다. 


더욱이 '그러한 호칭'안에 암묵적으로 내재된 '가족 내 서열'은 상호 존중과 배려에 기반한 평등한 가족 관계에 미묘한 균열만을 발생시킨다.  이는 각각의 호칭 안에 내재된 '~로서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할, 당연히 누려야 할 대우'가 부록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역할 놀이'에만 심취하다 보면 가족으로서의 존중보다는 역할에 따른 '무례'를 범할 여지도 더욱 커진다. 



그래, 그것 참 일리가 있구나
 

천만 다행히도 어머니께서는 내 의견을 사뭇 진지하게 들으시더니  동감을 표하셨다.  새로운 시도나 변화에는 늘 크고 작은 진통이 따르는 법이기에 사실 아무리 합리적인 부모님이라도 선뜻 공감해 주실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역시 우리 부모님은 '시부모님 계의 스티브 잡스'만큼 혁신을 추구하시는 타입이 확실했다.  


"그런데,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렇게 이름을 불러도 되지만 다른 친인척 어른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서는
그래도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해. 그분들에게는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일 거거든" 


(다시 한번, 우리 어머님 너무 합리적이지 않은가!)  

나 역시도 새로 들어온 며느리 하나 때문에 온 집안 어르신들에게 골치를 섞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어머니의 절충안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그 후로 나는 눈치껏 시댁 어르신들이 계시는 자리에서는 여전히 어떤 호칭도 부르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남편의 동생과 대화를 나누며,  종종 부모님을 포함하여 따로 모인 자리에서는 마음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서로에게 그 어떤 기준을 들이댈 필요가 없기 때문에 괜한 오해로 실망하거나 서운할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누군가에는 조금 무심한 사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존중에 기반한 이러한 적당한 거리 유지가 향후 지속 가능한 가족관계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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