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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Sep 13. 2020

명절이 젤 한가한 며느리

21세기 신개념 고부관계

너 결혼한 거 맞냐?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는 시기가 곧 다가온다.

이번 추석은 결혼 후 맞이하는 대략 7번째 명절이지만 코로나 시국인 점을 배제하더라도 내 마음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시댁에 내려갈 생각에, 음식 할 생각에, 치울 생각에, 잔소리 들을 생각에 없던 두통부터 온다던 최측근 며느리들의 하소연이 결혼 후에도'남의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오히려 결혼 전에는 친인척 간의 왕래가 거의 없는 가정환경에서 쓸쓸한 명절을 지내왔던 탓에

 '결혼하면 오손도손 음식 만들면서 북적거리는 명절을 보낼 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감(?)마저 가지고 있던 터였다.  (이런 말해서 죄송합니다..쿨럭)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공교롭게도 명절 연휴가 얼마가 돼 건 간에 '시댁 일정'은 '반나절'이면 끝난다.

이는 순전히 '일하는 며느리들' 데려다 고생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배려 덕분이었다.  


보통 설에는 서울의 도심사찰에서 주관하는 '공동 차례'에 아침 일찍 참여한 뒤 절에서 제공하는 건강한 떡국을 한 그릇씩 나눠먹고 해산한다. (이 때는 반나절은커녕 2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추석에는 어머니께서 미리 주문한 '차례 음식'으로 간단한 차례를 지내고 함께 식사 후 마무리하면 끝이다. (이 때는 그래도 설거지라도 거들 수 있어서 그나마 며느리 노릇? 하는 느낌이 든다)


사실 어머니는 차례상 조차도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며 간단한 가족 외식으로 대체하기를 주장하셨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시 할머님-어머니의 시어머니-이 계시는 동안에는 그 정도까지의 개혁(?)은 무리인 듯싶었다.  

주문해서 받은 차례음식


사실 어머니는 5남매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30년 넘게 집안의 온갖 대소사를 도맡아 앞장서 추진해 오셨다. 그 와중에 자식들을 키워내고, 아버님 내조에도 소홀함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며느리,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냈다.(고 들었다) 아버님을 포함한 집안의 모든 어른들이 중대한 결정에 앞서 늘 어머니의 의견을 구하는 것만 봐도,  그리고 언젠가 남편을 통해 어머니가 50대 이후에 요리를 아예 끊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그간의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투입한 노고의 양과 질이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의아한 대목은 당신이 그동안 혼자 해왔던 역할을 이제는 며느리들에게 대물림한다 해도 사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며느리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 라는 확고한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하셨다. (내가 어머니를 시댁 어른이 아닌 내 인생의 '진짜 어른'으로 여기게 된 대목이기도 하다. )


어머니의 배려 덕분에 우리 집안에서 명절은 며느리들에게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 되었다.

보고 싶은 친정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충분한 휴식으로 만성 피로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도 있고, 요즘 같은 시국만 아니면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부부끼리 오붓한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명절 연휴가 가장 기다려지는 행복한  며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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