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과의 갈등에 있어 대표 선수 격인 시어머니를 시작으로 시누이, 어떨 때는 시아버지까지 등판하는 경우도 있더랬다. 주변 경험담을 비롯해 미디어에서도 그러한 실태를 꽤나 자주 다뤘던 터라, 저토록 예상 가능한 문제를 한 아름 안고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라는 의구심마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지인은 그때까지 언급된 적 없던 인물로인한 '깊은분노'를 성토했다. 시댁 구성원이 주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로도 이미 벅찬 상황에서 예상치못한'new face'가 등장한 것이다. 이름하여 그녀의 남편의 남동생의 아내 되는 이, 바로 손아래 '동서'였다.
그녀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데다가,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을 제외하고 특별히 볼 일이 없는, 어찌 보면 결혼 후 가장 '담백한' 관계일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강 건너 바라보는내입장에서는사사로워보이는 문제들이대부분이었다. 부모님 생신 때 누가 '먼저' 내려가서 생신상을 준비하느냐로 신경전을 벌인 이야기, 조카의 생일 선물을 매번 챙겨 보냈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없는 것에 대한 괘씸함, 앞뒤가 다른 언행 때문에짜증 난 이야기 등이었다.
사실 며느리와 시댁은 '남편'이라는 견고한 교집합으로 연결되어있다. 나는 남편을 사랑으로 택했고, 그런 남편은 시댁의 혈연이기 때문에어느 날 갑자기사랑이 식지 않는 한며느리와 시댁은 한 몸을 지닌 샴쌍둥이나 다름없다.
반면에 형님과 동서는 '같은 집안'의 형제를 '우연히'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로만연결된확률적인관계이기때문에 가족으로서의 유대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충분하고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지난 4년 간 동서와 함께한 시간을싹싹 끌어 모은다 해도만 하루가 채 되지를 않는다.그리고 단 둘이 주고받은 대화의 양은 1시간쯤 될까.? 이쯤 되면 서로를 거의 모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형님 동서 지간이라 해도서로에 대해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 후 '동서와의 안전거리 두기'에 대한 두 가지 규칙을 정했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거리두기'가 아닌 '안전'이다.멀어지기 위함이 아닌 어디까지나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의도가 있다.
앞서 지인의 경우처럼 인간적인 교감 없이 단지 형님-동서라는 역할에 갇혀관계를 급조하려다 보면 반드시 감정적인부작용이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관계의 생산성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상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다.
규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존댓말 하기
둘째, '형님 노릇'하지 않기
우선, 존댓말은 규칙이랄 것도 없다. 친밀하지 않은상대에게 존대를 하는 것은확인할 가치도 없는'예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하대'하는 것이예의(?)라는 어른들의조언을무작정따라보려고도했으나낯가림이 심한 나로서는 오히려 그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대화에집중하기 어려웠다.혹시나 동서가 기분 상할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규칙은 동서로서의 역할에 대해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형님' 역할에 심취하다 보면 분명 동서가 '마땅히 해줬으면 하는 것들'에 대한 바람이 생길 것이며,혹시라도 그것들에 못 미칠지라면서운함이들 수밖에 없다.
결국 '강요'는 '분노'로, '기대'는 '실망'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져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형성에 장애물이 될 뿐이다.
덕분인지는 몰라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동서와의 관계에 있어 별 탈이 없다. 서로에 대한 역할 기대가 없으니 '각자 알아서 잘하자'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 누가 뭘 준비해서, 어떻게 했는지, 봉투에는 얼마를 넣었는지를 일일이 관심에 두지 않는 것도 효도의 양과 질을 비교해 가며 경쟁적으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은 '진심'에 있다.
특히 부모님께 잘해서 가정의 평안을 추구하는데는 손위,아래가 따로 있을 수 없다.그저각자 사는 형편에 맞게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며, 이것만이 불필요한 역할갈등을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길이라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