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한 손으로는 등짝 스매싱을 날리며 다른 한 손으로는 자동으로 벌어진 입을 막는다. 누가 들을새라 본능적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기까지 한다. 56년생 엄마의 60여 년 인생 중에도 듣도 보도 못한 신박한(?) 이야기인듯하다. 남의 이야기였다면 험담이라도 했을 눈치이지만 당신 딸이 장본인이라 그럴 수없는지 "얘좀 봐~' 라며 기가 찬 듯 웃어넘긴다.
"하하하하하하하하... 후화... 진짜요???"
친한 30대 미혼 동료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냐며 놀란 토끼눈을 하고 반문하기 바쁘다. 동료는 결혼도 한 적도 없는데 이미 '며느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시댁에서 낮잠을 잘 수 있는 건 피곤한 그 집 아들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다.
주말에 시댁 부모님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함께 티타임을 가지기 위해 거실에 모여 앉았다. 배는 불렀고 거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따뜻했으며, 평상시 주말보다 일찍 기상한 탓에 졸음이 솔솔 몰려왔던 것이다. 부모님과 남편의 대화 소리와 TV 소리까지 백색소음이 되어 자장가처럼 들려왔고 나는 소파 등받이에 목을 기댄 채 스르르 눈을 감고야 말았다. ㅎ
"얘, 그러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자렴"
꾸벅꾸벅 조는 며느리에게 어머니가 솔깃(?)한 제안을 하셨다. 누군가는 그렇다고 진짜 들어가서 자면 어떡하니?라고 질책할지 모를 일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판단을 할 겨를이 없을 만큼 비몽사몽 상태였다.
"네.. 그래야겠어요.."
독이든 성배일까?? 모르겠다..
나는 어머니가 내어주신 안방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째깍째깍...
어느 정도 지나자 거실에서 이런저런 말소리와 함께 짐을 옮기고, 청소기를 돌리고, 현관문 여닫는 소리 등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남편은 내가 자는 동안에 부지런히 부모님의 이런저런 소소한 부탁을 들어드리는 듯했다.
'역시 착한 내 남편...'
완전히 잠에서 깼을 때 시계를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밥을 먹자마자 낮잠을 잤더니 얼굴이 어묵처럼 불어있었다. 갑자기 내가 누운 이 자리가 부모님 침대라는 사실과 내가 이 집안의 맏며느리였다는 사실이 번뜩 떠올랐다. 조금 머쓱한 기분으로 달팽이처럼 스윽 미끄러져나가자
"잘 잤니??"
라며 세상 온화한 미소로 아버님과 어머님이 나를 반겨주신다. 무표정한 남편은 부지런히 일하느라 콧등까지 떨어진 안경테를 손 등으로 치켜올리며
"이제 슬슬 가쟈~"라고 말한다.
부모님 댁에서 나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편의 눈치를 보며 슬쩍 떠본다.
"너무... 졸려서... 자버렸네.."
그러자 남편이 말한다.
졸리면 자는 거지. 그게 뭐 어때서?
올타커니!!
맞아. 그게 뭐 어때서???
그렇게 말해주니 2%의 찜찜함이 완벽히 사라진다.
역시 그 그 부모님의 그 아들이구나 싶다.
이상 며느리가 시댁에서 낮잠 자는 게 하등 특별할 것 없는 나의 아주 소소한 결혼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