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그레이 Sep 07. 2020

시부모님께 전화하는거 불편해요

21세기 신개념 고부관계

시부모님께 안부 전화드린 적 한 번도 없어요


나는 결혼 4년 차 맏며느리다.

잘 못 받아들인다면 시부모님과 담을 쌓고 지낸다고 오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주는 아니지만 분기에 한두 번 정도는 직접 뵙고 식사를 하기도 하고,  가족회의가 필요한 사항은 '밴드'로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혹시 그 보다 더 긴급한 사안이 있을 경우에는 누가 뭐래도 시부모님과 가장 편한(?) 사이인 남편을 통해서 공유받는다. 그 덕분에 시부모님과의 대화에서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기에 구태여 전화를 주고받을 일이 딱히 없다.


어서 와, 이제부터 여기가 네 집이야


나이는 많은데 딱히 내세울 게 없다는 괜한 죄의식(?)을 가지고 시댁에 처음 방문했을 때였다.

잔뜩 쭈구리가 된 아들의 낯선 여자 친구에게 (당시에는 미래의) 시아버님이 건넨 첫인사말이었다. 순간 울컥했다. 내가 상상조차 못 했던 반응이었을뿐더러 살면서 내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따뜻한 첫 마디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뭐하시고?', '어느 대학 나왔고?', '어디 살고?', '형제자매는 뭐하고?' 등의 기출 질문지에 대해 나름 준비해 간 답안도 무용지물이었다. 질문은커녕 두 분은 내게 그 어떤 형식의 질문으로 나를 파악하려 하거나, 곤란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나는 그 댁의 가족이 되어 있었다.


이거 실화임?


'앞서 결혼한 수많은 지인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이지?'

어리둥절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혹시 아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빨리 결혼시켜야 할 다급한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라는 황당무계한 의심마저 들었다.


'이러다 궁금한 이야기Y의 사연 주인공이 되는 거 아니야?'


시부모님의 진가(?)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부터 빛을 발했다.  예단 예물 등을 생략하고 가족, 친지 및 가까운 친구들만을 초대하고자 했던 '스몰 웨딩' 결정에 두 말없이 선뜻 동의해 주셨다. '정말로 아들을 빨리 처리(?) 해야 하는 걸지도 몰라'라는 불안한 마음속에서도 모든 것이 내가 바라는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시부모님의 유일한 개입은 신혼여행에 대한 것이었다. 결혼 성수기에 구태여 비싼 돈을 들여 여행을 가고 싶지 않았던 탓에 다음 언젠가로 미루려고 하자 "그래도 신혼여행은 다녀와야지"라고 하시며 여행비 전액 지불을 자처하셨을 뿐이다.


선물 같은 거 절대 사 오지 마!!! 필요한 거 하나도 없다.

신혼여행 출국길 어머니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길지도 않은 여행인데 어른들 선물 챙기느라 시간 낭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으레 하는 형식적인 말씀이 아니라 거의 명령에 가까웠다. 그 말씀에 너무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허락해 주시고 결혼 준비에 여러모로 신경을 쓰신 양가 어른에 대한 감사 인사는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빈손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출국 전 한국에서 이미 준비해뒀던 터였다. -한국이 뭐든 종류도 제일 많고 품질도 가장 우수한 것 같다-


너희 둘이 잘 살면 돼


오직 우리 둘이 잘 살면 족하다는 부모님은 결혼 이후에도 단 한 번도 부부생활에 관여하지 않았을뿐더러 며느리로서의 그 어떤 역할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으레  2~3일에 한 번씩은 전화로 안부를 전하고, 주말마다 찾아뵙고, 손주를 하루빨리 안겨 드려야 하는 등 과거 숱하게 들어왔던 '사이좋은 고부관계를 위한 백서'는 딱히 써먹을 때가 없었다. 사실 이런 관계는 미혼 시절 '미드'를 통해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꿈꿔왔던 결혼생활이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그것도 나한테 현실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뿐이다.


시부모님과도 친해질 시간이 필요해


수 년째 바로 옆자리에서 함께 근무 중인 가까운 직장 동료와도 사적인 전화 연락을 해 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낯을 많이 가린다. 나의 절친들이 이걸 읽으면 '네가?'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믿거나 말거나 나이가 들면서 낯가림이 더욱 심해진 케이스다. 잘 가던 동네 슈퍼마켓도 사장님이 아는 척을 하는 순간 그 길로 발 길을 끊어버리던 나다. (사장님 죄송합니다...ㅜㅜ)


그런 내게 시부모님이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물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이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좀 더 공들여, 서둘러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마저도 억지로 하는 것은 영 내 성향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부모님께는 몹시 죄송스럽지만..) 덜컥 팔짱을 끼고 '아버니임~, 어머니임~~'을 외치며 아양을 떨만한 살가운 며느리도 되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생겨 먹었다.  그래서 결혼 전에 나를 가장 괴롭혔던 고민은 '우리 둘이 잘 살 수 있을까'가 아닌 다름아닌 '전형적인 며느리상을 요구하는 시부모님이면 어떡하지?'였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정반대의 시부모님을 선물 받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시부모님께서는 여전히 내게 그 어떤 요청 사항도 없으시다. 그저 "코로나인데 회사는 별 일없이 다니고 있니?", "저번에 내가 빌려준 책 너희 집에 있지 않니?", "아버지랑 등산 다녀와서 찍은 사진이야"와 같은 평범한 일상을 공유해 주실 뿐이고 나는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애교인 이모티콘 남발로 두 분에 대한 감사함과 사랑을 담아 최선을 다해 '반응'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그런 진심이 닿았는지 시부모님께서는 처음부터 나를 " 며느리"가 아닌 "00아~"라고 이름으로 친근하게 불러주신다는 것이다. 그런 덕분이  나도 두 분을 시부모님이 아닌 '부모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전생에 좋은 일을 참 많이 했나 보다.. ^^v  



이전 05화 스몰웨딩에 관한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