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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Aug 18. 2020

스몰웨딩에 관한 고찰

비합리적인 결혼식 관행으로부터 자유롭기

'결혼'을 하기 위해 여성은 최소 5000만 원, 남성은 2억 원이 소요된다고 이야기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에는 더하려나?-  결혼이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때에는 남녀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의 '불균형'이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내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런가'보다 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가 되자 그 범위에 속해있던 지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줄 맞춰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는 물론이고 별다른 친분이 없는 회사 동료의 결혼식 일정으로 5월과 10월의 주말을 분주하게 보낸 기간만 어림잡아 4~5년은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러 가는 자리였지만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획일화된 '결혼식 포맷'은 그 하루를 위해 최소 6개월 이상은 마음 졸이며 준비했을 신랑 신부의 수고가 무색할 정도로 그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또한 과거 꽤 친한 지인의 결혼식 준비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바로는 '결혼식=스트레스'라는 공식이 성립되기에 충분했다. 행복감에 젖어도 모자를 예비부부는 예식장, 신혼여행, 스드메, 예물, 예단, 혼수 등을 준비하면서 잦은 이견과 언쟁으로 낯빛을 붉히기 일쑤였고 급기야 '파혼'이라는 단어가 기어코 한쪽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파국에까지 이르렀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랑하는데.. 더 이상 뭐가 필요한 거지?'




시간이 흐르고 흘러 - 예상보다 더 많이 흘러 - 나도 결혼의 당사자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앞서 참석한 수많은 결혼식 샘플들이 내게 반면교사용 빅데이터가 돼주었고 덕분에 나는 결혼식을 준비함에 있어 두 가지 분명한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첫째, 결혼식은 최대한 간소하게 할 것. 왜냐하면 결혼식을 위해 결혼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영혼의 짝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결혼이라는 형식을 갖출 뿐이기 때문이며, 둘째, 결혼 비용은 무조건 공평하게 부담할 것.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비슷한 기간 사회생활을 해서 여성의 무려 4배가 넘는 결혼비용을 부담시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불공평'하고 말이 되지 않는 조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두 사람이 사랑을 전제로 남은 인생을 '공동체'로서 살아가기로 '합의'하는 것일 뿐인데 한 사람에게만 일방적으로 경제적인 부담을 짊어 지우는 것이 어째서 당연하게 인식되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장 우선적으로 신부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스드메', '보석'을 포함해 '예단 예물', '고가의 신혼여행', '최신 사양의 값비싼 혼수' 등을 과감하게 걷어냈다. 그러자 결혼의 본질이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둘이 하나가 되기로 약속하는 자리, 그런 자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가족과 친한 친구들 그리고 꽤 훌륭한 저녁식사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결혼식의 조건은 다 갖춰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도우미 없이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며 조여 오는 코르셋에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운 인형 같은 신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끌리지 않는 빈티지 드레스를 여유 있게 입고 내 인생의 가장 특별한 날의 주인공답게 버선발로 하객 맞이에 앞장섰다. 하객들은 신부를 '구경'하는 것이 아닌 행복에 겨워 입이 귀에 걸린 신부의 '환대'를 받는 색다른 광경에 환호했다.




결혼식 준비는 간소해진 덕분에 매 순간이 설렘의 연속이었고, 결혼식 당일은 현장에 있던 모두에게 잊지 못할 만큼 특별하고 따뜻한 추억으로 각인되었다.  "이렇게 특별한 결혼식은 처음이야"라고 소회를 밝히던 하객들은 말 그대로 모든 허례허식을 생략한 '스몰' 웨딩에 대한 나의 신념에 한 스푼 더 확신을 더해주었으며,  일평생 처음 보는 생소한 결혼식 풍경에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친인척 어른들도 점차 분위기에 동화되어 젊은 두 사람이 함께 가는 첫걸음에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냈다.


결혼 후 3년이 지난 지금 내 손가락에는 여전히 결혼반지가 없고, 집안 어디에도 그 흔한 웨딩 액자 하나 걸려있지 않지만 나는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감동인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결혼할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조언하자면 부디 결혼식에 쏟아부을 모든 에너지를 그보다 천만 배는 중요한 결혼 이후에 나와 내 반려자가 꾸려갈 인생 그리고 서로가 어떻게 하면 서로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데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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