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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Apr 23. 2024

인생의 토크(torque)가 필요한 때

그냥 달리지만 말고 가속을 붙혀

자타공인 실행력은 정말 뛰어나다.

이 부분만큼은 어지간해서는 나를 이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급한 성미 탓이다.

어찌나 급한지 일의 경중과 상관없이 충분한 기한이 있는 일도

밑도 끝도 없이 하루 이틀 내에 끝내려고 덤빈다.

내게 'To do list'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이다.


나의 실행버튼이 남들보다 좀 더 빨리, 급하게 눌리는 이유를 제법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남들보다 게으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실행의 의미는 일종의 '비상벨'이다.

긴급한 상황에 눌러서 모두에게 경각심을 주듯,

내 경우에는 게으름에 대한 경고로서 우선 마음에도 없는 '실행'을 택한다.  

시작을 했으니 그다음에는 좋든 싫든 뭐라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맞다면,

나는 적어도 내가 시작한 일에서 반 이상의 성과는 이룬 셈이다.




적어도 두어 달에 한 번은 만나는 가까운 지인이 있다.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으로, 남편 다음으로 내게 충언을 많이 하는 인물이다.


"프리랜서는 힘들어요..ㅠㅠ"


라고 앓는 소리를 했다.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게. 근데 요새 다들 어려워.."


라고 답한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다.


그런데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되묻는다.


"근데 너.. 어디까지 노력해 봤어?"


"........"


내심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기 위안만 삼았지 정작 그 질문에는 즉답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도 하거니와...'와 같은 허튼 생각만 마구 스쳤다.

말문이 막힌 내 모습에 지인이 끝내기 홈런을 치고 만다.


"네 밑에 직원이 있어도, 네가 한탄만 했을까?"


두근댈 정도의 당혹감은 이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 합리화의 변명으로 주변의 공기를 가득 메웠다.

그러다 이내 '있는 만큼 노력한 건 아니죠'라는 자백으로 변모했다가,  

최종적으로는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성으로 마무리되었다.  


'시작만큼은 끝내주게 잘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남편과 차를 빌려 드라이브를 갔다.

근 1년 만의 근교 외출이었다.


공유카를 빌릴 때면 두려운 부분이 있다.

운전자의 평소 습관을 세심하게 반영할 수 없고, 차량의 정확한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혹시 모를 위험 변수에 대한 우려도 크다.

몇 시간 빌려 쓰는 입장에서는 그런 걱정을 뒤로하고 일단 달리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식의 판단을 하며 맞춰 나가는 방법뿐이다.


그럴 때 남편으로부터 '브레이크 민감하네', '핸들이 왜 이렇게 뻑뻑해'와 같은 표현을 종종 듣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나로서는 생소한 표현이 귀에 들어왔다.


급경사 언덕 구간에서 차에서 굉음이 울리자 남편이 말했다.


"아오~~ 이 차 토크(torque)가 왜 이렇게 딸려"


"토크(torque)가 뭐야?"


"토크(torque)는 힘이야.

이런 언덕 올라갈 힘이 부족하니까 이렇게 소리만 큰 거야"


순간,

불과 며칠 전 지인과의 대화가 오버랩되면서 한 가지 큰 깨달음이 머릿속을 채웠다.


'아.... 힘이구나 힘..'


비유하자면 나는 속도가 일정한 안전차량이었다.

남들보다 빨리 차에 타고 시동만 걸뿐,  결코 가속을 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얼마 지나지 않아도 나를 앞질러 달리는 차량들에 밀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힘이 부족하니 '앓는 소리'만 커지는 것도 당연했다.


인생의 깨달음은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얻게 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됐어'가 아닌 '이 정도까지는 해봐야지'라고,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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