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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지혜: 배우며 일하며 사는 법

by 문용대

백 년의 지혜: 배우며 일하며 사는 법


서울 광화문 늦가을의 오후, 올해로 백여섯 해를 산 노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기자들 앞에 섰다.

작고 단정한 체구였지만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또렷했다.

“사람이 언제 늙는고 하니, ‘이제 늙었다’고 생각할 때 늙는 겁니다.”

그 한마디에 기자들의 웃음이 번졌지만,

말속에는 한 세기를 살아낸 철학자의 삶과 사색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장수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 지었다.

“내 친구들 가운데 백 살이 넘은 사람들을 보면, 모두 꾸준히 책을 읽고 여전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답은 단순한 생활의 습관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노년을 쉼의 시기로 받아들이기보다, 계속 배우고, 쓰고, 일하며 살아가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이는 그의 저서 『무엇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가』의 중심 사상과도 이어진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젊음이나 외모가 아니라,

배움과 사랑, 그리고 일 속에서 점점 깊어지는 인간의 품격이었다.


배움은 생명을 연장하는 힘이다


김형석 교수는 “인간은 배우는 한 늙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일이다.

책 속에서 우리는 미처 살아보지 못한 삶을 대신 체험하고, 그로 인해 마음이 자라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독서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독서는 곧 ‘삶의 예배’였다.


그의 글에는 자주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배우는 사람은 행복하다.”

삶의 어느 시기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철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늙지 않는 정신’으로 이어진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이 자라나는 한 인간은 결코 노쇠하지 않는다.


일은 인간의 존엄을 지킨다


그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하는 한, 인간은 살아 있습니다.”

그에게 은퇴란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세상과 나누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에게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여전히 도움이 되는 존재로 남는 일, 곧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계속 쓰는 사람”이라 불렀다. 몸이 불편해도 매일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사람을 만난다. 그 모든 행위가 그를 살아 있게 하는 일이다.

『무엇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가』에서도 그는 이렇게 썼다.


“일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세상 속에 있음을 확인한다. 사랑과 배려가 일의 목적이 될 때, 그 일은 생명이 된다.”


늙음이 아니라, 깊어짐


김형석 교수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는 “늙음보다 성숙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에게 노년은 쇠락이 아니라 완성의 시간이다. 그는 80대에 강의를 이어갔고, 90대에 책을 쓰기 시작했으며, 100세가 넘어 새로운 사색을 기록했다.


그의 삶을 보면,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 그가 늙지 않은 이유는 젊음을 붙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아침 새 인생을 시작합니다.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니까요.”


그 고백에는 단단한 신앙, 겸허한 철학, 그리고 깊은 인간애가 담겨 있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


『무엇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가』는 결국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늙을 수 있을까?”

그는 외모나 명예, 성공이 아니라

끝까지 배우고, 사랑하고, 일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의 문장 가운데 특히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다.


“삶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랑할 줄 알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여전히 필요한 존재로 남는 사람 —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아름답다.


마무리하며


광화문의 기자간담회가 끝나자,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일했으니, 참 좋은 날이네요.”

그의 얼굴에는 긴 세월의 평화가 묻어 있었다.


그의 인생은 거창한 명언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작은 실천과 꾸준한 성실함으로 완성된 아름다움이었다.

그가 백 년 넘게 증명해 온 것은

‘일하며 배우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다시 깨닫는다. 늙음은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늙을 것인가는 우리 몫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길의 이름은,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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