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칠칠맞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헛똑똑이’라는 말도 듣는다. 때로는 두 단어가 합쳐진 ‘칠칠맞은 헛똑똑이’라고도 한다. 다른 이에게서가 아니라 아내로부터다. 사실 ‘칠칠맞다’는 말은 일처리를 반듯하고 야무지게 한다는 칭찬이다. 뒤에 붙어 나오는 ‘헛똑똑이’를 들어 보면 칭찬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된다. 헛똑똑이는 겉으로 보기에 똑똑한 것 같은데 실제는 아무 실속이 없다고 꾸중하는 말이다. 야무지게 일처리 잘하는 사람으로 나를 아는 이가 혹시 있을지 모른다. 정녕 “나는 왜 이럴까!”하고 생각될 때가 많다. 나름 큰일에서부터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사고를 쳐 본 경험이 많아 아내한테만은 기죽어 산다.
고향에서 사업을 한답시고 물품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체 대금을 지불해 버린 적이 있다. 물품 상자 속에 빈 통이 잔뜩 들어있는 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저지른 사고였다. 그걸 해결하느라 고생 좀 했다. 직장 관계로 혼자 먼저 올라 와 전세 집을 얻어 이사를 갔다. 이삿짐을 내리고 있는데 주위에 몇 사람이 모여들어하는 말, “경매 신청된 거 몰라요?” 기가 차다. 짐도 일부 풀지 못하고 몇 년을 다퉜지만 보증금 일부는 날릴 수밖에 없었다. 두 건 모두 상대를 믿은 내 잘못이다. 직장생활에만 매달려 성실히 일하던 나로서는 사회 초년병으로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한 셈이다.
이번은 좀 다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겨 2년간 임대주택에 산 적이 있다. 금(金)도 아닌 돌로 깎아 만든 쌍 두꺼비 형상을 훔쳐갔다며 절도범 취급을 하는 나쁜 임대인과 엮여 몇 년을 대법원에까지 드나들었다. 최종 기각 결정이 내려졌지만 보증금 받아내느라 오래 고생을 했다. 어찌 됐건 그 집도 처음 내가 가 본 집이었으니 사람 볼 줄 모른 나로서 역시 할 말이 없다. 나는 부동산과는 인연이 없나 보다.
며칠 전 이틀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사무실 열쇠에 은행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 두 개와 USB가 달린 걸 잃어버렸다. 집에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어 사무실에 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없다. 은행 일을 할 수 없고 컴퓨터로 일할 수도 없다. 저장된 자료가 여러 가지다. 자료가 남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그걸 못 찾으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걱정이 태산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랜만에 입었던 양복이 범인이었다. 숨어있던 그를 찾으니 수십 년 전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안경도 몇 개를 잃어버렸다. 아내가 같이 자전거 타자고 사 준 스포츠용 고글 선글라스를 두어 달 전에 잃어버렸다. 가까운 아차산 중턱 쉬던 곳에 그냥 두고 산을 한참 오르다가 문뜩 생각이 나 그곳에 갔지만 그대로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 일에 대해 여러 날 동안 말을 못 했다. 가죽장갑도 몇 켤레 째인지 모른다. 며칠 전 출근하면서 구청에서 마련해 둔 헌 옷 통에 장갑을 옷과 함께 넣어버렸다.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겨우 찾았다. 아직도 그건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혼한 지가 45년이 지났다. 아내는 결혼하기 전부터 쓰던 가방이며 수십 년이 지난 장갑을 지금도 쓰고 있다. 나는 아내 볼 면목이 없다.
전화기를 놓고 다니는 경우는 셀 수도 없다. 선글라스처럼 아차산 중턱 둘레길 난간에 친구와 걸터앉아 쉬다가 그냥 놓고 한참을 걸었다. 5년이 넘게 쓰던 전화기를 바꾼 지 한 달이 채 안 된다. 큰 맘먹고 거금(?)을 들여 장만한 것인데 다행히 찾았다. 전철역 입구에서 교통카드가 들어있는 전화기를 꺼내려다가 비로소 집에 두고 왔음을 알고 되돌아가곤 한다. 가서는 할 말이 없으니 “당신도 내 나이 돼 봐!”하고 멋쩍게 웃어넘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심하다. 아내로부터 직장 일이나 친목회 등의 일은 그리 안 하면서 집안일이나 나의 일은 빵점이라고 구박받아 싸다. 나는 왜 이럴까! 혹시 나에게 치매라도 일찍 찾아온 걸까? 아니야, 아직 그건 아니야! 평소 긴장이 풀려서일 거야. 이제부터라도 긴장 좀 하고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마누라한테 꾸지람 대신 제대로 된 ‘칠칠하다’ 거나 헛똑똑이가 아니라 ‘똑똑이’라는 소리 한번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