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함께 33년을 살다가 사망한 한국인 남성 배서진(가명) 씨 이야기다.
배 씨는 내가 잘 아는 민영환(가명) 씨의 손아래 처남으로 경상북도 포항에서 가까운 어느 농촌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63세에 저세상으로 갔다.
태어나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나, 각자의 생애나 맞이하는 죽음의 과정은 천차만별이다. 영화를 누리며 살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한다. 죽음도 아름답고 신성하게 맞이하는가 하면 힘겹게 살다가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배 씨의 삶이나 죽음은 누구보다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배 씨는 많이 배우지 못했고 생활 형편도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30세에 일본 여성 마츠다(松田, 가명) 씨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았다. 배 씨는 일본어가 서툴고 아내 마츠다 씨는 한국말이 아직 서툴러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다. 직장도 변변치 않은 터라 그의 아내 의견에 따라 처가가 있는 일본 나고야 부근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그의 아내는 유산(遺産)이 있어 한국에서보다는 잘 살 수 있으리라 판단했으나, 유산 문제가 갈 때와는 사정이 달라졌던 모양이다.
일본에서 여러 명의 자녀를 낳고 그리 오래지 않아 불치병 치매 일종인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었다. 사는 곳이 일본 땅인 데다가 자식들은 어머니 마츠다 씨와 대화하며 살다 보니 한국어는 못한다. 내성적인 배 씨는 병들기 전에 일본어가 자유롭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식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됐었는지도 궁금하다.
배 씨는 십수 년 병을 앓는 동안 자식 중 남자아이들은 군대에 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들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살 수 있는 처지가 안 될 뿐 아니라, 한국어를 하지도 못하고 한국에 들어올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병역기피자로 지내야 하는 처지다.
한국의 배 씨 형제들은 말이 안 통하다 보니 일본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동안 배 씨의 병세는 점점 심해졌다. 서툴지만 대화가 조금 되는 매형 민 씨가 아내(배 씨의 누나)와 문병을 갔다 왔다. 10년 전인 2011년 9월, 배 씨 나이 53세 때다. 그때 이미 배 씨는 말을 못 하고 먹지도 못할 만큼 병세가 위중할 때다. 그의 아내는 이미 수년 동안 남편 병 뒷바라지에 지쳐 몰라볼 만큼 늙어 보였다. 한국의 민 씨 부부 등 배 씨 형제자매 가족들은 서로 살기 바빠 그 뒤로 신경 쓰지 못하고 지냈다. 바빠서라기보다 전혀 소생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서였다고 말해야 옳을지 모른다.
지난달 말 일본에서 배 씨 아내로부터 물어물어 민 씨의 바뀐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다. 위급하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아무도 일본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민 씨는 여권을 꺼내 보고야 병문안을 갔다 온 지 10년이 흘렀음을 알았다. 그동안 본인도 그렇지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리다.
민 씨는 배 씨 아내와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번역기 파파고(papago) 앱에서 한글을 일본어로 번역해 문자를 주고받는다. 다음날 심정지(心停止)라는 연락이 왔다. 배 씨의 누나인 민 씨 아내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소리 없이 눈물만 훔친다. 4일 만에 교회 주관으로 장례(성화식-聖華式)를 치렀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 물었다. 일본 장례문화가 한국과 다름을 알게 되었다. 화장한 유골 항아리를 집에다 모신단다. 좋은 데 가라고 40일 동안 기도한다고도 한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 사는 동안 가장 잘한 일은 5남 1녀의 자녀를 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몹쓸 질병으로 고생하며 살다 갔지만 자녀를 남기고 간 지상에서의 그 실적으로 고통이 없는 좋은 곳에서 영면하리라 본다.
배 씨의 명복을 빈다. 유족들에게는 위로의 뜻을 전하며 부디 용기 잃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