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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블리 Nov 18. 2022

장바구니에 담긴 사랑

남편의 사랑법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두 개 있다. 산 게 없는데 무슨 택배일까 궁금해하며 가지고 들어와 보니 남편 이름이 적혀있다. 뭘 또 산거야 구시렁거리며 박스를 열어보았다. 하나는 떡볶이밀키트 또 하나는 사과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숨도 안 쉬고 떡볶이라 말한다. 덕분에 남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떡볶이를 연애할 때부터 자주 먹었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수없이 떡볶이를 사다 날랐다. 임신 중 떡볶이가 먹고 싶어 남편이 사 왔지만 입덧으로 먹지 못하고 울면서 바라만 본 적도 있다. 남편은 미안한 얼굴로 우걱우걱 떡볶이를 먹었다. 시골에 이사 온 이후에는 주변에 떡볶이를 사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밀키트를 자주 사 먹었다. 그 또한 늘 남편의 몫이었다. 내가 사달라 하지 않았는데도 남편은 핸드폰을 보다 떡볶이만 봤다 하면 주문을 했다.



두 개의 택배 상자를 열어본 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신이 나서 대답했다.

"그 떡볶이는 신상이야. 맛있을 것 같아서 주문했지. 사과는 애들 먹이라고 작은 거 한 박스 샀어."



나는 남편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안다. 먹을 것을 챙겨주는 것, 그것이 그가 나와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다. 연애할 때부터 그랬다. 맛있는 집을 발견하면 꼭 나를 데려갔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맛집을 설명하는 모습이 퍽 사랑스러웠다. 내가 맛있게 먹어주면 본인이 차린 밥상도 아니면서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그에겐 기쁨이고 행복임을 알았고 덕분에 나는 살이 빠질 겨를이 없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은 종종 두 손 가득 먹을 것을 들고 들어오며 해맑게 웃었다. 

"집에 오다가 마트 잠깐 들렀는데 네가 좋아하는 과자 1+1 하길래 사 왔어. 잘했지?

이거 신상과잔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사 왔어. 맛있겠지?"

나는 단 한 번도 챙겨준 적 없는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 같은 날도 그는 무심하게 다 챙겨준다. 한 번은 챙겨줄 만도 한데 나는 여전히 챙기지 않고, 남편은 꿋꿋하게 챙긴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괴로운 것은 식사를 챙기는 것이다. 아침 먹으며 점심 고민, 점심 먹으며 저녁 고민이다. 남편은 그만의 방식으로 나의 고민을 덜어주려 애쓴다. 밀키트와 반찬을 시켜주며 오늘 저녁은  이걸로 해결하자고 말한다. 아내의 괴로움을 그런 식으로라도 덜어주려 하는 남편에게 참 고맙다. 밥을 하든 죽을 하든 신경조차 쓰지 않고 밥상에 앉아 반찬투정이나 하는 남편들도 많은데, 함께 고민을 나누려 애쓰는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마켓컬리 쿠폰 왔는데, 장 볼 거 있어?"

나보다 더 살림꾼이다. 마켓컬리도 그런 남편을 알아보는 걸까? 나한테는 오지도 않는 쿠폰이 남편에겐 쉼 없이 날아온다. 덕분에 알뜰하게 장을 본다.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목록을 남편에게 보내주면 야무지게 자신의 장바구니에 담아 주문을 한다. 더불어 본인이 먹고 싶은 간식과 나와 아이들이 좋아할 간식도 더 담아서... 



그의 장바구니에 담긴 사랑으로 우리 집은 늘 푸근하다. 퇴근길, 두 손은 무겁지만 얼굴만은 환한 그의 모습에서 나는 진한 사랑을 느낀다. 문 앞에 쌓인 택배 상자에는 아빠의 사랑도 그득하게 담겨있다. 예전처럼 닭살스럽게 사랑을 말하진 않지만 (때론 그런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다) 그가 사 온 떡볶이 한 입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오늘 저녁엔 신상 떡볶이를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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