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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소 Apr 13. 2022

1. 명륜

앵두꽃과 콘크리트의 두꺼운 껍질과 쵸메

7년째 명륜동에서 먹고산다. 누군가가 혹시 어디 사세요라고 물어보면 그냥 대학로 아니면 혜화동이라고 대답한다. 거주민이나 근처 학교 학생이 아니라면 명륜동이 어디인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명륜동이라구요. 명륜동이 어디죠. 혜화동이라고 하면 그제야 아 혜화 혜화 참 좋죠 이름도 예쁘고.


아닌  아니라 명륜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복잡한 문제다. 엄밀히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이란 곳은 없으며 혜화동에 속한 명륜3가라고 불러야 옳다. 머리 아픈 이야기를 쓰기 싫으니 간략히 하자면 강점기 당시 이곳은 행정상 쵸메(정목, 丁目)  불리었고 이것이 해방 직후 거리  街로 번역되었다고 전한다. 쵸메는 커다란 길목 혹은 교차로에 붙이는 이름이고 명륜동은 길목에 관통당한 그야말로 골목의 도시이며 나는  길목의  줄기에 산다. 명륜의 길목은 어떻게 봐도 넓거나 길지 않다. 예전에는 넓고 길었을까.   없지만 반쯤 지하에 뿌리를 박은  빌라는 도로를 메운 콘크리트의 단면을 선명히 드러낸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때마다 나는  단면을 지나쳐야만 하고 명륜을 덮고 있는 두껍고 끈적한 콘크리트 껍질을 마주한다.


아마도 땅값이 오르자 점차 도로를 좁히고 거기에 마찬가지로 좁은 집을 짓고 바퀴벌레 같은 도시 은둔자들을 품었을 것이며 그들이 또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 먹고사는 방법을 벼락같이 고안해 내었고 보잘것없는 삶은 전설로서…. 가부장의 신화로서…. 영원히... 그만 이야기하자.


 나는 해방  이곳을 명륜 쵸메라 불렀을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한다. 아니 정말 그렇게 정직하게 명륜이라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가리오까. 쿠로쇼. 겐끼라. 지워진 이름은   없지만, 아무튼 쵸메라고 부르기는 했을 것이다. 쿠로사끼사마 메류 산쵸메데 아이마쇼.


우암 송시열이 살아 송동宋洞 이라 불렸다는 이곳 명륜은 골짜기가 깊고 꽃나무가 많아 아주 오래전부터 꽃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 그중에서 특히 앵두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앵두는 벚나무의 한 종이므로 앵두꽃이 핀 것을 벚꽃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벚꽃은 벚꽃이고 앵두꽃은 앵두꽃이다. 나는 이제 앵두나무 없는 명륜에 산다. 산쵸메라고도 불리지 않고 담백하게 명륜 삼 가, 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떠올리려 애쓰지만 한참 전에 잊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마도 다시는 기억해 내지 못할 것 같다. 콘크리트 껍질의 두께는 정확히 백이십 센티 정도다. 겨울에는 차갑고 단단하게 굳은 덩어리에 곧 들이닥칠 여름에는 짙게 끈적한 점성의 유체에 갇혀 있다. 그래도 먹고살고자 하는 의지는 끊임없이 산쵸메의 껍질을 뚫고 나와 여기에는 파스타나 커피를 파는 한옥이 많다. 나는 삼 년을 주기로 업종이 바뀌는 예쁜 가게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커피를 마신다. 창문 너머 보이는 정원의 묘목은 벚나무일까. 다다음 해쯤 이곳이 인생네컷으로 업종을 바꾸면 알 수 있겠지만 확인하러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그것이 혹은 거기에 이것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껍질 위의 부단한 삶에서 나타남과 사라짐만은 늘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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