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보 Oct 24. 2021

40대 중반, 하버드에서 나를 발견하다


하버드의 첫인상


2009년 8월 말, 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하버드를 만났다. 보스턴의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 아래 하버드에서의 경험이 시작되었다. 하버드 학생들의 첫인상은 여름의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강렬했다. 여유 있는 표정. 활짝 웃는 미소. 그들의 얼굴이 빛났다. 열심히 달려왔고 그래서 또 다른 성취를 위한 출발선에 서 있는 그들이었다.


신입생 환영 파티가 시작되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선다. 하버드 교육대학원 래드클리프 야드 Radcliffe Yard는 어느새 신입생으로 빽빽이 채워졌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야드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이미 몇몇이 춤을 주고 있다. 건너편에서는 둥근 탁자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음악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래드클리프 야드에 가득하다.


하버드 생활을 시작하는 행복감과 설렘이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배어 나온다. 2009년 가을학기 신입생 환영 파티장에서 만난 하버드 신입생은 모두 활기 넘치고 환했다. 그들은 목표를 성취한 뿌듯함과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 행복했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다시 서게 된 학문의 전당에서 느끼는 감회는 특별했다. 이날 나는 그 어느 집단에서도 느끼지 못 한 강한 자신감과 충만한 행복감을 그들에게서 보았다.


9월의 첫 주. 드디어 하버드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떨리는 가슴으로 첫 수업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교수들은 어떨까? 학생들은? 수업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대부분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앉아 있다.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하거나 1-2년 사회경험을 쌓고 온 학생들로 보인다. 나의 클래스메이트들! 나와는 20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난다. 이 젊은이들과 함께 힘든 하버드에서의 여정을 시작한다.


나는 잘 해낼 거야! 내 나이에 뭐가 두려워. 아줌마 배짱으로 해 보는 거야. 설렘과 긴장감으로 팽팽해진 마음을 다 잡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첫 학기에 네 과목을 수강했다. 대부분의 수업이 학생 간의 토론과 질문 위주로 진행되었다. 수업 전에 100-300 페이지 정도의 교재와 논문을 읽고 가야 한다. 교수는 학생이 미리 읽고 왔다는 전제 아래 수업을 진행한다. 교수가 핵심 논지를 말하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학자의 견해를 설명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질문을 쏟아낸다. 개념과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기에 수업 전에 예습은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교수의 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질문에도 답할 수 없고 토론에도 참여할 수 없다.


교수가 질문을 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온다. 서로 발표하려고 야단이다. 이렇게 적극적인 토론 참여의 모습은 처음이다. 발언권을 교수에게 얻어 발표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업의 흐름이나 의견교환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논의에 끼어들어 말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열띤 토론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멍하니 지켜보았다. 강의가 아닌 발표 중심의 수업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모두 발표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 속에서 첫 주 수업은 거의 듣기만 했다. 그러던 중 ‘나는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면 유난히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인 데다가, 교수와 학생 모두 낯설어 토론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게 영어는 외국어다. 논리력도 달리는 내가 학문적인 토론을 영어로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5년 넘게 공부나 학문적인 토론과는 담쌓고 지내온 나다. 아이 엄마로 가정 주부로의 지낸 몇 년의 간극이 하루아침에 메워질 수는 없음을 인정하자. 서두르지 말자. 스스로를 타일렀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시작하기로 했다.


“전략을 짜자!”


 매일 질문 한 가지씩 하자. 일단 교재와 논문을 정독하자. 미리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논의나 논쟁의 중심이 되는 내용을 찾아 질문거리를 서너 개 준비했다. 교수의 강의와 수업의 흐름을 잘 포착해 적절한 순간에 질문을 했다. 이렇게 한 시간에 질문 한 가지로 시작한 도전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몇 주가 지나자 수업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교수와 학생들에 대한 긴장감도 누그러졌다. 때때로 핵심을 찌르고 순발력을 발휘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교수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안 하거나 토론이 진행되다가 막히면 교수는 내 얼굴을 바라보기도 했다. 나에 대한 기대의 표출이었다. 이런 순간이면, 느끼는  뿌듯함이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수업 중에는 언제나 긴장되었다. 간혹, 토론을 하다가 말이 꼬이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정신줄을 놓고 허둥댄다. 간신히 말을 마치고 나서 내 모습을 떠올리면 부끄럽고 창피하다. 내 도전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실패했고, 실패에 따른 자괴감으로 한동안 발표도 안 하고 강의실 귀퉁이에 박혀 있기도 했다.


의기소침해지고 용기를 잃게 되더라도 그냥 주저앉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30대 후반에도 할 수 있었던 것은 40대 중반인 지금도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마법의 주문을 걸었다. 그래. 뻔뻔해지자. 실수와 실패는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성공의 순간만 기억하자. 자꾸 작아지고 물러서려는 나를 일으켜 세워 앞으로 나아가도록 최면을 걸었다. 용감한 대한민국의 아줌마가 되어 버텼다. 강한 자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자가 강한 자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프리젠테이션은 더 큰 도전이다. 프리젠테이션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이용해 짧게는 10분에서 수십 분을 발표해야 한다. 성적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여러 사람 앞에 서면 지나치게 긴장해 발표를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나 자신을 잘 알기에 긴장감을 줄이려면 발표 내용을 장악해야 했다. 완벽하게 준비하면 긴장이 돼도 비참하게 실패하지는 않는다.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철저히 준비했다. 발표 내용의 스크립트를 작성해 연습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용을 반복해서 읽고 말해 외우다시피 했다. 녹음도 했다. 녹음한 내용을 모니터하고 다시 연습했다. 발표하는 날, 강의실에 새벽같이 도착해 미리 리허설도 했다. 실전과 똑같은 물리적 공간과 상황에서 연습하기 위해서다.


공부를 하면서, 발표를 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느꼈다. 내용이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핵심을 정리해 나의 말로 전달하려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늘 배움의 과정에 고군분투하였다. 부족함을 알기에 더욱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능력은 노력으로 메꾸면 된다. 연습을 여러 번 하고 리허설까지 하면 긴장이 덜 되었다.


노력으로 메꾸려는 나만의 전략 아닌 전략이 안 먹힐 때가 있다. 그것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연달아 프레젠테이션이 몰린 주가 있다. 이런 때는 거의 잠을 못 자고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한다. 시간이 부족해 충분히 연습을 못한 경우, 결과는 좋지 못했다. 발표 중 헤매고 할 말이 기억이 안 나 버벅거리기도 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게, 더구나 40이 다 되어 미국에 와 현지 영어를 체험한 나에게 연습과 노력은  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대학 캠퍼스에 살지 않고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에서 통학하는 나에게, 아직은 손이 많이 가는 유치원생 아이들 돌보는 엄마에게, 충분히 연습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잠을 줄여 준비하고 발표 연습을 했다. 몰아치듯 몇 차례의 프리젠테이션을 끝내고 난 후의 주말 휴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하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변화하고 발전했다. 땀과 눈물의 시간 가운데 나의 인내와 노력은 고스란히 나의 몸에 녹아들어 나의 능력으로 자리 잡았다. 나의 학문적 토론 능력이 성장한 것이다. 마지막 학기에는 수업 중 토론을 어느 정도 즐기게 되었다. 교수가 편안한 토론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업은 토론 참여가 더욱 즐겁다. 토론을 통해 ‘나의 지식과 통찰’ , ‘나’를 표현함으로써 얻는 기쁨이 크다. 나의 발언이 수업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때는 더 큰 성취감을 느꼈다.


 프리젠테이션도 보다 편한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적당히 긴장이 되면서 심장이 살짝 쫄깃해지는 느낌에서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고도의 집중을 하며 나를 표현하는 순간을 즐기려고 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즐기자! 이런 생각이었다.


이제는 발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약간의 설렘과 긴장감이 있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나를 표현하고자 한다.  초긴장 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에 숨이 멎을 것 같아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하던 내가 아니었다. 첫 주 수업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나였다. 나의 이런 변화는 내가 봐도 실로 놀랍다. 따뜻하고 편안한 토론 분위기를 만들어준 교수와 동료 학생 덕분이다. 무엇보다도 교수의 역할이 컸다. 소심한 나를 용감한 토론 참여자로 이끈 교수님들께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


하버드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학문적 이론이 현실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학생의 창의적인 생각을 듣고 싶어 한다. 학생 스스로 이론과 자신의 경험을 결부시켜 나름대로 독창적인 논리를 만들어 가도록 격려한다. 단순히 저명한 학자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바탕으로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고무한다. 이런 하버드 교수의 지도방식은 엄마와 교사로서의 나의 경험이 학업의 원천으로 쓰일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육아 경험과 교직 경험이 토론과 발표는 물론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를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로 양육하는 엄마의 경험을 토론과 연구에 적용하였다. 특히, 아동의 이중언어 발달,  읽기/쓰기 능력 발달에 관한 수업에서 큰 몫을 했다. 다섯 살 난 아들의 한국어-영어 쓰기 발달 사례 연구를 수업의 프로젝트로 제출했다. 연구자로서의 훈련과정에서 쓴 사례연구이지만 공부를 시작해 처음 독자적으로 수행한 연구였다. 이 연구를 수행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큰 성취였다.


이 프로젝트를 가지고 하버드에서 주최한 학생 학술대회에서 포스터 프리젠테이션 Poster Presentation 부문에 참여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한 공식 학술대회였다. 10년 전의 나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했다면, 내게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다른 학술대회에도 참여할 수 있었을 텐데… 최선을 다 했지만, 엄마로서 주부로서 한정된 시간과 1% 부족했던 도전정신이 여전히 아쉽다.


실수와 실패에서 배우다


무거운 백팩을 메고 2년을 하버드와 집을 오갔다. 엄마로서, 주부로서, 아내로서 먼 거리를 오가며 통학했던 나에게는 공부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너무 한정적이었다. 24시간을 오로지 공부에만 쏟을 수 있기를 소원하며 2년을 보냈다. 거의 고3처럼 살았다. 하늘이 빙빙 돌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돌보며, 아내로서 주부로서 일을 해냈다. 엄마로 주부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숨고를 틈 없이 살았다. 후회 없이 공부에 온 힘을 쏟았다. 태어나서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다. 졸업이라는 성취도 기쁘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지다.


공부가 내 중심이 되었던 2년간의 일상이었다. 하버드에서 공부하며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매일 정진하는 가운데 배우고 성장했다. 그 여정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실수와 실패로 가슴이 아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속상했고 잘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실수와 실패는 나의 부족함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였다. 내가 어떤 면이 취약한 한지를 아는 것은 나의 지력과 능력을 발전시키는 출발점이었다.  어떤 부분을 고치고 다져야 하는지 아는 이상 더 나은 자신에 대한 희망이 있다.


시행착오로 괴로웠던 기억 중 하나다. 좋은 성적을 받고 싶었다. 학생으로서의 나의 노력과 성장, 발전을 성적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점수에는 목숨 걸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공부 자체로 즐기기 위해 점수에 초연해지려고 했다. 실제 나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수업 토론 참여, 프리젠테이션과 더불어 페이퍼 쓰기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나, 업그레이드되는 나의 능력을 요구했다. 또한, 기말 성적에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요한 과목의 첫 페이퍼에서 B를 받았다. 내가 제출한 페이퍼에 코멘트와 더불어 B로 매겨진 평가에 충격에 휩싸였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 못 자 가며 정성을 기울여 쓴 페이퍼였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교수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원하는 페이퍼, 하버드가 원하는 라이팅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채, 용감하게 페이퍼를 제출했던 것이다. 그것이 실수였다. 하버드가, 교수가 바라는 학문적 글쓰기의 스타일과 논문 포맷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좋은 페이퍼를 쓰는 지름길이었다. 교수는 하버드에서 제공하는 라이팅 센터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교수의 조언에 따라 라이팅 센터의 컨설팅을 받았다. 그다음 페이퍼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섰다. 과제의 평가기준 Rubrics에 충실했다. 결과는 최고 점수인 A였다. 너무 기뻐 컨설팅을 해준 라이팅 센터의 TF(Teaching Fellow)에게 페이퍼와 교수 코멘트를 보여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 이후부터는 시행착오 없이 페이퍼를 쓸 수 있었다.


교수로부터 페이퍼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 나의 학문적 글쓰기 능력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그 결과 첫 학기 첫 페이퍼를 쓸 때와 졸업에 즈음해서의 나의 글쓰기 능력은 괄목 성장했다. 그 이후 받은 페이퍼 평가는 모두 A였다.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자문과 조언을 구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40대 중반. 어쩌면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나이다. 움츠려 드는 나를 스스로 격려하는 쉽지 않은 길을 걸었고 완주했다. 불혹, 40대. 유혹에 흔들이지 안 들리지 않는 대신 새로운 목표를 새워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다른 이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 나를 발견했다. 나는 여러 모로 부족한 사람이다. 부족하기에 이를 채우기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갔던 나,  실수와 실패에 꺽이지 않고 스스로를 이긴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타협하지 않은 나를 하버드에서 발견했다.


자신의 성취와 그 과정에서의 노력과 분투는 고스란히 나의 몸속에 힘과 지혜로 저장된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해 내온 나를 믿으면 오늘도 묵묵히 나의 길을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